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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 서울의 봄을 기다리며
2024 서울의 봄을 기다리며
  • 성일권 |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한국어판 발행인
  • 승인 2023.12.29 1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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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청년들은 늘 정치에 소외돼 있다. 청년층의 ‘머릿수 지분’은 유권자의 30%가 넘는 반면, 정치적 지분은 1%에 불과한 현실이다. 만 15~39세의 청년들을 둘러싼 사회문제는 끊이지 않는다. 대한민국 10~30대의 사망 원인 1위가 자살이며, OECD 기준 자살률 1위, 그것도 ‘압도적 1위’라는 불명예를 벗지 못하고 있다. 수많은 청년들이 등록금 부담, 실업난과 비정규직, 전월세 사기 등 온갖 사회적 문제에 시달리고 있음에도, 그들을 제대로 대변할 청년 정치인은 보이지 않는다. 기존 정치판에는 여전히 젊은 신인이 들어갈 틈이 없다.

매년 출산율이 급감(2023년 말 0.6%)하고 있다. 청년들이 연애, 결혼, 출산을 기피하며 죽어가는 근본적인 이유는, 아마도 ‘지금보다 더 나은 미래가 오지 않을 것’이라는 절망감일 것이다.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직장을 얻은 청년층이 가장 많이 종사하는 업종은 숙박·음식점업(17%), 제조업(16.7%), 도·소매업(13.6%)의 순이었는데, 그중 대부분이 아르바이트 등 비정규직이었다. 청년층의 42%는 평균 4,000만원의 빚을 지고 있고, 주택을 소유한 청년은 10%에 불과하다.

반면, 재벌 3~4세의 경영 후계는 더욱 가속화하고, 현 정권에서 부유층의 종합부동산세와 상속세에 ‘면세’ 특혜를 줬으며, 대기업의 ‘억대 연봉’ 직장인은 지난해 131만 7,000명으로 전년 대비 17.3%p 증가했다. 절대 다수의 청년 빈곤층과는 대조적인 양상이다. 

이렇게, 기득권층은 여전히 자기들끼리 배가 터지도록 부와 권력을 나눠먹고 있고 조금이라도 자신들의 입지가 흔들리는 것을 용납하지 않는다. 정치권은 평소에는 거들떠보지 않던 청년을, 선거철만 되면 ‘급조’한다. 갑자기 청년조직을 강화하고, 자신들의 쓰임새에 ‘싹수’가 있어 보이는 청년 몇 명을 ‘스카우트’한다. 하지만, 이번 선거에서는 여·야 정치권이 모두 당권 경쟁에 몰입하고 제 살길을 찾느라 여념이 없어 보인다. 

뜨거운 가슴으로 민주주의를 외치며 박정희 독재 정권에 항거하고, 1980년 서울의 봄을 주도한 당시의 청년세대는 386이라는 ‘빛’나는 갈채를 뒤로 한 채 이제 요지부동의 기득권 세력이 돼버렸다는 비난을 받는다. 화염병과 짱돌을 내던지며 군부독재의 권위주의에 항거한 ‘거시적’ 민주주의자들이지만, 일상 속의 ‘미시적’ 민주주의에는 익숙하지 않았던 386세대는, 자신들이 그토록 저항했던 구시대적 권위주의로부터 자유롭지 못했다. 족벌 재벌을 비판하면서도 자신의 자식은 갑질하는 금수저가 되기를 갈구했고, 평등을 주창하면서도 학벌과 스펙의 불평등을 조장했고, 자유를 강조하면서도 자신들의 이익을 극대화하는 자유만을 챙겼으며, 남녀평등을 말하면서도 여성에 대한 갑질을 당연시했다. 

정당의 명칭을 여러 차례 세탁하며 군부독재의 권위주의의 명맥을 그대로 이어온 보수정당은 원래 그렇다고 치더라도, 이른바 ‘민주’라는 이름을 붙인 민주당 계열의 정치인들이 하나둘씩 추락하며 청년들로부터 ‘내로남불’, ‘술자리 진보’ 등의 조소를 받는 것이,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슬픈 자화상이다. 독재 정권에 뿌리를 둔 ‘자칭’ 보수우파 정당이나, 그 독재 정권 항거에 존립의 이유를 뒀던 자-타칭 진보좌파정당(민주당은 스스로를 진보적이라고 하지만, 좌파적이라고는 하지 않는다. 대신, 반대세력으로부터 좌파적이라는 비난 어린 평을 받는다)은 더 이상 변화를 원치 않는 수구 세력과 다름없다.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가장 큰 위기는, 다름 아닌 청년층의 정치적 냉소다. 그렇다고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퇴보 원인이 기성세대에만 있는 건 아니다. 정치권에 청년층을 대변하는 상징적 인물로 스카우트된 젊은 정치인들의 왜곡된 정체성도 빼놓을 수 없는 원인이다. 명문대 출신으로 노동 경험이 거의 없는 채, 정치권에 줄을 대 여의도에 입성한 이들이 과연 청년층을 대변할 수 있을까? 이들이 정치 활동을 하면서 청년 대다수가 겪고 있을 취업난, 불평등, 결혼과 육아, 전세 사기, 채무 등의 문제에 과연 얼마나 공감할 수 있을까? 

지금까지 낙하산식 공천을 통해 정치권에 입문한 ‘청년’ 정치인들은, 시대정신에 부합한 정치적 결기를 보여준 적이 없다. 정치의 꿀맛 탓인지, 한번 여의도에 입성하면 청년 정치인들은 어떻게든 자리를 지키려 안간힘을 쓴다. 초심을 팽개쳤거나, 아니면 처음부터 초심이라는 것도 없었을지 모른다. 당리당략의 주요 고비 때마다, 여당과 야당의 초선의원들이 자신들의 공천권을 움켜쥔 주군(主君)을 향한 호위무사를 자처하는 모습을 종종 볼 수 있다. 

선거철이 한발씩 다가오면, 기성 정치권은 한층 파릇하고 신선한 정치 신인들의 물색에 나선다. 이에 부응하기 위해서일까? ‘싹수’ 있는 청년 정치지망생은 ‘젊은 정치’, ‘세대교체’를 주장하며 OO청년 협의회장, OO위원회 부위원장, 차세대위원회 위원장, 청년OO대표 등 그럴싸한 경력을 포장하며 정치권에 줄을 대느라 바쁘다. 하지만 기성세대는 신선 냉장고에서 생선을 고르듯, 정치 신인의 ‘신선미’를 잠시 이용하려 할 뿐, 결코 자신의 자리를 내줄 생각이 없다. 환갑을 넘나드는 나이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과거 386세대, 세상을 바꿔보겠다면서 서울의 봄을 주도했던 그들은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라는 신념을 새로 다진다.

충복의 총격으로 박정희가 갑작스럽게 죽자, 쿠데타로 집권한 신군부의 권력욕을 다룬 영화 <서울의 봄>이 관객 1천만 명을 돌파했다. 전두환 군부의 1979년 12월 12일 밤의 쿠데타를 다룬 이 영화에서는, 대학생과 청년들이 이날 이후부터 1980년 5월 군부의 광주시민 학살 때까지 군부독재 타도와 민주주의를 외쳤던 이른바 ‘서울의 봄’을 담아내지는 않았다. 순전히 필자의 상상력으로 감독의 의도를 넘겨 짚어본다. 감독은 이렇게 말하려던 게 아닐까. 40여 년 전 당시 청년들이 외친 ‘서울의 봄’은 불행하게도 변질됐다고, 기성세대의 낡은 가치와 질서가 무너지고 해체될 때야 비로소 진정한 ‘서울의 봄’이 올 수 있다고. 이를 위해서는, 오늘을 살아가는 청년들의 각성과 정치화가 더욱 요구된다고…

청년들이여, 새해에는 아프지도, 죽지도 말자! 부디 힘을 합쳐 모두가 함박웃음을 짓는 진정한 2024년의 ‘서울의 봄’을 만들어보자!

 

 

글·성일권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한국어판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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