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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크푸르트학파 100주년, 무엇을 해야 하나
프랑크푸르트학파 100주년, 무엇을 해야 하나
  • 권오용 l 충남대 사회학과 강사
  • 승인 2023.11.30 16:5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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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는 프랑크푸르트 사회연구소가 설립된 지 100주년이 되는 해로, 전 세계 각국에서 학술대회와 발표회, 강연 등을 통해 ‘프랑크푸르트 학파 100주년’을 기념했다. 비판이론은 우리에게 무엇인가? 비판이론은 현대 사회에, 그리고 우리 사회에 어떠한 의미를 갖는가?

 

프랑크푸르트 학파의 호르크하이머(왼)와 아도르노(오) ⒸJeremy J. Shapiro

대량소비사회 속의 상품화 확장

비판이론의 사회 인식은 ‘후기자본주의(Spätkapitalismus)’라는 개념으로 집약된다. 후기자본주의 개념은 과거와는 다른 새로운 사회가 등장하고 있음을 인지하고 근본적 변화를 겪은 사회를 규정하기 위한 노력의 산물이었다. 유럽의 파시즘과 미국의 대량소비체제를 모두 경험한 비판이론가들은 자본주의 자체가 새로운 단계로 진입했음을 인식하였고, 실제로 이 체제는 전 세계적으로 확산되어 과거 19세기와는 질적으로 구분되는 20세기 자본주의사회의 도래를 의미했다.

이 새로운 자본주의의 가장 큰 특징으로는 우선 국가가 경제에 직접적으로 개입하지 않으며 시장원리의 작동을 최대한 보장하는 것이 아니라, 경제계획과 정책을 통해 산업투자, 환율 및 물가 관리 등 경제에 대해 전반적으로 개입하는 ‘개입적 국가’가 되었다는 점이다. 국가의 집중투자를 통해 자본은 산업클러스터로의 발전을 이룩하였으며, 독점대기업에 의한 시장지배가 일반화되었다. 그리고 이 독점대기업의 확대된 생산력을 뒷받침해주는 대량소비사회가 등장하게 되었다. 대량소비사회의 특성인 상품화의 확장은, 문화산업의 발달과 인간관계의 사물화 현상으로 이어지게 되었다. 문화산업과 사물화된 인간관계는 상품에 대한 도착적 태도를 일반화시켜 자발적 체제순응을 강요한다. 그리고 이 ‘강요된 자발성’은 명백한 폭력적 수단을 통해 체제순응을 강요하던 나치보다 지배체제를 더욱 공고하게 만들었다.

그 결과 후기자본주의 사회는 에른스트 블로흐(Ernst Bloch)가 “비동시적인 것들의 동시성(Gleichzeitigkeit der Ungleichzeitigen)”이라 불렀던 특성을 갖게 되었다. 파시즘에서 엿보이는 세계 지배에의 전근대적 환상과 초근대적 대량학살 메커니즘의 동시적 존재는 경제적 측면에서 국가에 의한 경제의 개입이라는 중상주의적 요소와 시장의 자유가 동시에 존재하는 형태로 나타났다. 이는 구체적인 일상생활에서도 어렵지 않게 발견되곤 했다. 예를 들어 1968년까지 독일에서는 결혼한 여성이 직장에 다니기 위해서는 남편의 동의서가 필요했다. 근대 자본주의적 생활양식과 여성을 가부장의 소유물로 보는 전근대적 의식이 동시에 공존하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현재의 시대는 비판이론의 설립자들이 활동하던 시기와는 구조적인 측면에서 구분된다. 예를 들어 후기자본주의에서 보이는 경제에 대한 전반적인 국가의 개입은 오늘날 명백하게 축소되었으며, 대규모 사업장 중심의 경제구조는 현재의 ‘유연한’ 생산체계와 금융자본의 지배와는 질적으로 다르다. 그렇다면 프랑크푸르트 사회연구소 설립 100주년을 맞는 지금, 우리가 비판이론에서 기대할 수 있는 바는 무엇인가?

 

문화와 페미니즘 분야로도 확장된 비판이론 

비판이론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사회의 구조적 변화를 감지하고, 그 토대에서 발전했다는 데 있다. 비판이론은 사회의 근본적 변화를 포착하면서도 인간의 해방이라는 근본적 목표에 대한 전망을 잃지 않았으며, 오히려 해방을 방해하는 변화하는 현실에 대한 과학적 인식을 추구했다. 이 변화는 부르주아 시민사회뿐 아니라 그 대안으로 등장했던 공산주의운동 진영에도 적용된다. 이 과정에서 비판이론은 끊임없는 자기성찰을 통해 사회 변혁의 도구로서 이론을 바라보는 전통적인 좌파적 이론과 실천의 결합에서 벗어나면서도 사회의 전체적 변혁을 추구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존하고자 했다. 경제적 신자유주의와 세계화로 대표되는 오늘날은 20세기와는 여러 면에서 질적인 차이를 보이고 있으나, 우리가 이 시대의 질적인 전환 속에서도 인간의 해방이라고 하는 목표를 견지한다면 급속하게 변화하는 사회에 대한 새롭고 의미있는 인식 및 전망도 가능할 수 있을 것이다.

비판이론 특유의 주체와 대상에 대한 변증법적 인식은 1990년대 후반 이래 지속적으로 제기되는 여러 ‘포스트-’ 논의들과 최근 부상한 신유물론적 경향들처럼 근대적 인식방식에 대한 도전들에 대한 효과적인 대응방식일 수 있다. 확실히 현대에 새롭게 등장한 세계적 수준의 문제들은 전통적인 이분법적 세계 인식으로는 해결하기 어려워 보인다. 그러나 우리가 기존의 주체와 대상의 상호관계를 배타적인 이분법에서 매개적인 변증법적 관계로 전환시킨다면, 근대적인 인식론적 구분을 폐기하지 않으면서도 변증법 특유의 ‘운동’ 속에서 새로운 인식의 가능성의 발견을 기대할 수 있다. 변증법적인 관계에서 주체와 대상은 각자의 운동의 속에서 서로를 매개하며 특정한 방향으로 나아가는 모습을 보이기 때문이다. 이외에도 변증법적 주체-대상 인식은 거대이론과 구체적 경험 연구 간의 상호이해에 기여할 수 있다. 변증법적 인식 속에서 이론과 경험연구는 상호 분리되어있지 않으며, 그러므로 양쪽에서 상호이해를 위해 노력할 수 있는 명분을 제시해주기 때문이다.

변증법적 인식은 개별적이고 특수한 분야의 연구를 진행하면서도 전체에 대한 인식의 끈을 놓지 않을 수 있게 해준다. 비록 아도르노는 “전체는 허위(Das Ganze ist das Unwahre)”라 한 바 있지만, 이 문장에서 아도르노는 모든 사태의 마지막에 스스로 등장하는 절대이성이 진실을 구성한다는 헤겔적 입장에 반대하는 것이다. 전체는 지배와 억압을 내재하기 때문에 허위이며, 그러므로 전체에 대한 분석과 연구는 전체에 내재하는 지배와 억압을 드러내기 위해 오히려 적극 권장되어야 한다. 이 관점은 보편성이 특수성 속에서 재확인된다는 비판이론 특유의 관점의 원천이 되며, 비판이론에 근거하여 다양한 구체적 연구들이 기획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준다. 이미 90년대에 문화나 페미니즘 분야에서 비판이론은 다양한 분야의 연구를 뒷받침할 수 있음을 보인 바 있다.

 

100주년, 그러나 스스로 성취하지 못한 인간해방

오늘날 구체적 현실에 기초한 비판이론적 사회연구는 어떤 모습을 보이게 될 것인가? 필자는 『계몽의 변증법』에서 나타난 전략에 주목하고자 한다. 여기서 호르크하이머와 아도르노는 현 지배체제에 순응적이지 않은, 사회에서 받아들여지지 않고 배제되고 억압되며 망각된 부분들을 밝혀냄으로써 그 속에 도사리고 있는 억압과 지배를 폭로하는 전략을 취했다. 이 전략에서 특히 중요한 것은 이성과 합리성이 배제하는 영역들, 즉 통제하지 못하는 부분을 폭로함으로써 현재의 지배 관계가 사실은 그다지 강력하지 않다는 것을 드러내는 것이다. 두 번째로는 현재의 지배체제에 대해 사람들이 당연하다고 생각하고 있는 상식들이 수립된 근원을 탐색하는 것이다. 이는 ‘언제나 항상 그래왔다’는 인상을 주는 지배체제의 환상을 깨는 역할을 한다. 무엇인가 시작점이 있으면 종결점이 있기 마련이다. 비판적 인식은 현재 우리가 살아가고 생각하는 방식이 영원히 이어지지 않는다는 관점에서 현재의 불만족스러운 상황을 근본적으로 바꿀 수 있다는 가능성을 제공한다. 이 두 가지 전략은 지배체제를 정당화하는 이데올로기에 대한 비판으로 향한다. 이데올로기는 정신적인 구조물인 점에서 문화적인 것이지만, 그 안에 지배체제를 옹호하는 정치적 목적이 숨어있다. 이에 사회의 문화적 현상에 숨겨진 정치적 의도의 파악과 그에 대한 비판이 시도되어야 할 것이다.

노동과 관련된 사회현상들의 이데올로기적 의미를 추적하는 것은 이러한 비판의 한 실례가 될 것이다. 최근 한국을 비롯한 여러 선진산업사회에서 ‘빠른 은퇴’가 화제가 되고 있다. 주식과 부동산, 코인 투자나 도서 및 음악 저작권 등을 통해 ‘경제적 자립’을 이룬 후, 정년보다 빠르게 은퇴하는 것이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미국에서 고학력·고소득 청년층을 중심으로 나타난 소위 ‘파이어(FIRE, Financial Independence Retire Early)족’의 유행도 이와 비슷한 의미를 갖는다. 이러한 현상은 자본에 의한 강요된 ‘종속된’ 노동에서 벗어나 자아실현을 추구하는, 자본주의 체제의 비인간성에 대한 개인적 저항으로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빠른 은퇴의 목적인 자아실현에는 노동이 배제되어 있으며, 이들이 추구하는 경제적 자립은 인간다운 생계를 유지할 수 있는 ‘소비’에 집중되어 있다. 우리는 여기서 노동의 문화적 의미가 자아실현이나 직업적 소명의식이 아닌, 단지 ‘소비수단을 획득하는 과정’으로 축소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의미없는 노동과 그에 대한 보상의 형편없음을 자각하는 행위가 자산투기와 저작권 등 금융자본주의적인 자산축적이라는 행위로 귀결되는 것이다. 이는 살아있는 노동의 측면을 배제한 채 죽은 노동의 집적물에 집착한다는 점에서 자본이 노동을 다루는 방식과 완전히 동일하며, 그러므로 자본주의적 노동관계에의 저항이 아닌, 체제순응적인 기만이 된다. 개인적으로 필연의 왕국을 벗어날 수는 있겠지만, 동일한 사례가 집단적으로 가능할 것이라 보는 것은 완전히 허구적이다. 

 

비판적 사회연구를 더 활성화시켜야 

두 번째로 생각해볼 수 있는 비판이론적 현대사회 연구의 대상으로서 민족주의를 생각해볼 수 있다. 현재 전 세계적으로 유행하는 민족주의는 ‘종족성(ethnicity)’이 강조된 ‘종족민족주의(ethnonationalism)’로서, 고전적 정치 이데올로기로서의 민족주의와는 질적인 차이를 보인다. 19세기의 민족주의는 전제군주와 식민세력 등의 압제에 맞서 싸우기 위한 정치적 운동의 도구로서 인간의 자유를 위한 해방적 측면을 갖고 있었다. 그러나 우리가 살아가는 21세기의 현실은 이러한 민족주의의 의미를 변화시켰다. 가속화된 신자유주의적 세계화 속에서 상품교환의 범위가 전 세계적으로 확장되었는데, 이 과정에서 드러난 사회문제는 여전히 지역 차원에서 발생했기 때문에 실제 사회문제를 겪고 있는 사람들은 자신의 문제가 어디에서 비롯된 것인지 알 수 없었다. 이러한 사회관계의 ‘불투명성’이 일반화되면서 사회구성원들은 삶의 의미와 방향을 상실하고 존재론적 불안에 시달리게 되었다. 이 상황에서 개인에게 확신을 주는 유일한 집단적 범주는 누구에게나 원초적으로 주어지는 ‘가족’이었으며, 가족의 중요성은 ‘종족성’과 연관되고 이것이 다시금 ‘정체성’ 문제와 연결되어 종족민족주의는 전 세계적으로 확산되었다. 근대의 모든 사회관계는 다양한 사회·문화적 교류를 통해 형성되었으며, 이 점에서 종족집단의 순수성은 허구임에는 틀림없지만, 신자유주의적 세계화로 인한 불투명성 속에서 현대인들은 점차 종족 범주가 제공하는 허구적 확실성에 의지하고 있다. 이와 관련하여 우리는 사람들이 안정적인 소속감 및 삶의 방향설정과 의미부여를 추구하는 심리적·감정적인 원초적 욕구를 해소할 수 있어야 한다는 ‘필연성’을 진지하게 고려해야 할 것이다.

위의 두 사례는 모두 지배체제를 정당화해주는 정신적 구조물에 대한 비판이 현대사회 연구에서 어떠한 모습을 보일 수 있을지 거칠게 예상해본 결과이다. 중요한 것은 과거의 것을 아무런 변화 없이 최대한 순수한 형태로 되돌리려는 시도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점이다. 우리는 비판이론의 후기자본주의론 같은 이론적 결과물 그 자체가 아닌, 비판이론의 이론적 기초와 현실의 변화를 바라보는 관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비판이론은 연구자의 기본적인 시각이나 입장에 있어 마르크스에게 받은 영향을 후대에 전해줌으로써 사회에 대한 ‘비판적 태도’의 중요성을 보여주었다. 이를 보존하면서 우리는 시대적 변화에 맞는 새로운 연구들을 통해 사회적 비판의 외연을 넓혀갈 수 있을 것이다.

프랑크푸르트 사회연구소 설립 100년을 기념하는 이유는 아직 인간이 스스로 해방을 성취하지 못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섣부른 좌절이나 허무주의에 빠지기보다는 오히려 비판적 사회연구를 더욱 활성화시켜야 한다. 지배체제에 의해 배제되고 억압되며 망각된 것들을 찾아내고 그를 통해 지배체제의 영원성을 뒤집는 일은 매우 지난한 과업이지만, 쉽게 포기할 수 없는 것이기도 하다. 이것이 오늘날 우리가 비판이론을 바라보는 올바른 태도일 것이다.

 

 

글·권오용
2017년 독일 하노버 라이프니츠 대학교에서 사회학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현재 여러 대학에서 강의하고 있다. 비판이론을 활용한 사회분석과 파편화 시대 사회구성원들을 묶어두는 정신적 구성물에 대한 연구를 진행하고 있으며, 주요 논문으로는 『이데올로기의 일상종교로의 전환』 , 『증오의 생산, 대상, 정당화』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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