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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사의 '가오'
목사의 '가오'
  • 안치용
  • 승인 2024.07.15 14:3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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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G전문가 안치용의 한국 교회 톺아보기]

역사에 존재한 성서 중에 사악한 성경으로 불린 판본이 있다. ‘The Wicked Bible’로 불리는 것으로 간음 성경(Adulterous Bible)이나 죄인의 성경(Sinners' Bible)‘으로도 불린다. ’사악한 성경1631년 런던의 왕립 인쇄업자 로버트 바커와 마틴 루카스가 인쇄한 흠정역 성경에 심각한 실수가 들어있어 이런 이름을 얻었다.

출애굽기의 십계명을 다룬 부분에서 간음하지 말라간음하라로 찍었으니 당시 인쇄업자의 곤경이 오죽했을까. 영어로는 “Thou shalt not commit adultery.”“Thou shalt commit adultery.”로 인쇄했다. 식자공이 ’not’을 빠뜨렸고 교열 과정에서 확인되지 않아 벌어진 실수였다. 바커와 루카스의 인생이 급전직하했다는 얘기는 하나 마나 한 이야기이고, ‘사악한 성경판본이 지금은 귀한 몸으로 고가에 팔린다는 후일담이 전한다.

 

Amaryllis and Mirtillo. Scene from Guarini’s ‘Pastor Fido’ (early 1700s), Anonymous

 

요즘 교계에 사랑 이야기가 꽃을 피우는 듯하다. 사실 언제는 안 그랬나. 불륜이란 말을 쓰고 싶지는 않다. ‘내로남불이란 용어는 고쳐야 한다. 내가 해도 로맨스, 남이 해도 로맨스. ‘내로남로가 맞다. 간통죄가 폐지된 마당에 굳이 불륜이란 구태의연한 용어를 쓸 까닭은 없지 않은가. 가장 객관적인 말로는 혼외정사인데, 이것도 당사자의 아름다운 마음을 순전히 육체적인 욕정으로 깎아내린 것 같아 마뜩잖다.

어느 재벌 회장이 당당하게 혼외 사랑을 말하는 마당에 목사라고 그러지 말란 법이 있나. 남성에 국한한다면 내 느낌에 목사의 성윤리가 일반 신도의 성윤리보다 더 엄격할 것 같지는 않다. 조심스러운 추측이지만 이런저런 사랑 이야기를 너무 많이 접하다 보니 목사가 성적으로 자유분방한 직업으로 받아들여지기도 한다. 소위 잘 나가는 목사일수록, 대형교회를 담임하는 목사일수록 그들에게 사랑 이야기가 더 많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몇 명 안 되는 신도와 새벽기도를 하고 심방에 이런저런 사무에 시달리는 작은 교회 목사야 애초에 그럴 여력이 없겠지만, 목에 힘 좀 주고 다니는 목사님에겐 사랑의 은사가 넘쳐날 것 같기도 하다. 나만 그렇게 생각할까.

목사의 성윤리에 관한 제대로 된 사회조사는 없을 것이다. 응답자의 신뢰도가 떨어지는 설문조사일 테니 할 필요가 없다. 목사가 아닌 기독교인의 성윤리를 비기독교인과 비교한다면, 비슷하지 않을까 싶다. 다른 많은 항목에서 세상과 차이를 보이지 않는데 성윤리에서만 기독교인이 더 엄격한 잣대를 유지하리라고 믿을 이유가 없다. 목사 중에 성적으로 자유분방한 사람과 사랑꾼이 많으리란 예상에, 일부의 일탈을 근거로 억지로 일반화하고 목사를 모욕한다고 반발하고 성낼 사람이 있을 법하다. 실제로 얼마나 많은 목사가 세간의 예상에 맞는 그런 삶을 사는지 확인할 수 없지만, 실체와 무관하게 세상에서 그렇게 보는 게 사실이다.

그러니 아예 관점을 확 바꿔보는 건 어떨까. 간통죄 폐지 추세에 맞춰 목사와 교인이 서로의 사생활에 대해선 문제 삼지 않는 건설적인 방향을 모색하는 게 탁 까놓고 현실적인 해법이다. ‘사악한 성경이 더 편안한 목사나 신도가 적지 않을 테니 차제에 위선적인 문화를 바꾸자고 공론의 장을 열어보면 어떨까.

그러나 사랑이 마구잡이로 충만한 그런 교회는 아쉽게도 아직은 시기상조인 듯하다. 당사자에게 아름다운 이야기일 수 있겠으나, 세상의 기준이나 교회 공동체 다수의 기준이 변화를 받아들일 준비가 덜 되었기 때문이다. 아직 솔직함을 미덕으로 간주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둘만의 아름다운 사랑은 둘만의 아름다운 이야기로 은밀하게 간직하는, 최소한의 예의를 보이면 어떨까. 들키지 말란 뜻이다. 만일 들킬 만큼 사랑했으면 그때 처신은 간단하다. 목사나 교단의 직함에 연연할 게 무엔가, 훌훌 털고 사랑꾼으로 살아가면 된다. 시험에 든 어떤 목사는 들통이 나자 정말로 사랑했다고 당당하게 밝히고 교회를 그만두었다고 한다. 목사도 사람이니 성윤리에서 무너질 수 있다고 치자. 그렇더라도 책임윤리는 지키는 게 목사의 가오 아닐까. 가오라도 지켜야 나중에 하나님에게 변명이라도 할 것이 아닌가.

 

 

안치용

아주대 융합ESG학과 특임교수ㆍ전 경향신문 기자, 한신대 M.div 및 신학박사 과정 수료. 협동조합언론 가스펠투데이 기고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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