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9년에 발발한 3ㆍ1운동에서 한국 기독교의 역할이 지대했다. 독립선언에 서명한 민족지도자 33인 가운데 16명이 기독교인이었다. 운동 점화 단계의 주도자 48인 중엔 절반인 24명이 기독교인이었다고 한다.
운동이 일어나고 그해 12월 말까지 복역한 1만9525명 가운데 기독교인은 3373명으로 복역자의 17%. 천도교인은 2297명으로 11%였다. 당시 조선의 인구가 1600만 명 정도였고, 기독교인이 1918년 말 현재 21만2700명이었으니 전체 인구 중 기독교인 비중은 1.3∼1.5%였다. 독립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한 조선인 중 기독교인의 비율이 20%를 상회했다는 게 정설이다. 기독교인의 참여가 많았고 적극적이었기에 일제로부터 받은 박해가 다른 종교보다 컸다. 유명한 제암리 교회당에서는 비신자를 포함하여 한꺼번에 29명이 희생되었다.

지방화ㆍ전국화 단계에서도 기독교가 크게 기여했다. 교회나 기독교계 학교가 있는 지역에서는 대부분 기독교인이 앞장섰다. 독립운동의 주동 세력이 확인되는 지역이 311곳인데, 그 가운데 기독교가 주도한 지역이 78곳, 천도교 주도 66곳, 두 종교의 합작 지역이 42곳이었다.
3ㆍ1운동에 기독교가 중심이 됐다는 사실을 많은 기독교인이 모르고 있다. 한국 기독교의 뿌리엔 민족주의와 독립정신이 자리한다. 과거 일제의 식민지배를 피해 조선을 떠나 독립의 꿈을 키운 조선인들이 세운 마을이 만주의 명동촌이었다. 윤동주의 고향이기도 한 그곳 가옥들의 지붕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두 가지 문양이 보였다고 한다. 기와에 십자가와 태극이 함께 들어있었다는 사실은 한국 기독교의 뿌리가 무엇이었는지를 단적으로 상징한다.
독립기념관장으로 임명된 김형석 목사가 뉴스메이커가 됐다. 역사학자로서 김 목사의 견해를 굳이 소개할 필요는 없지 싶다. 다만 독립기념관장 선발을 위한 면접에서 김 목사가 “일제시대 조선인 국적은 일본이다”고 대답한 것은 매우 부적절했다고 본다.
역사학자로서 3ㆍ1운동에서 기독교인이 얼마나 독립운동을 열심히 하고 탄압을 많이 받았는지 누구보다 잘 알 그가 그런 형식논리상의 답변은 한 것은 안타깝다. 만일 작정하고 그렇게 답했다면 세간의 의혹대로 친일파나 뉴라이트이고, 별다른 생각 없이 말 그대로 형식논리에 입각해 답했다면 자격미달이다.
대한민국 헌법을 만든 사람들이 영토ㆍ국민ㆍ주권이 국가의 기본 구성요소임을 몰랐을까. 초등학생 수준의 상식 없이, 3ㆍ1운동이 일어나고 임시정부가 수립된 시점을 우리나라의 기원으로 삼았다는 게 김 목사의 생각일까. 독립운동을 벌인 조선인의 국적이 일본이라면 3ㆍ1운동은 반란이 되며, 감옥에 들어간 많은 우리 신앙의 선배들이 벌인 분투는 값없는 것이 된다.
이런 식의 논리는, 국적을 기계적으로 해석했기 때문이란 반론이 가능하고 김 목사 말대로 국적을 잃었기에 국적을 찾기 위해 독립운동을 한 것이 아니냐는 해석 또한 성립한다. 그렇다면 본격적인 국가 성립 시점은 1948년이어야 한다는 견해가 마찬가지로 기계적인 해석이 아닌가.

국가의 기원을 말할 때는 이른바 민족정기니 정통성 같은 정신적 유산에 정초하기 마련이다. 예컨대 대한민국의 기원을 단군왕검의 고조선으로 주장한다면 시대착오적이라는 비판과 비아냥을 받겠지만, 부당한 외세의 지배에 항거하고 잃어버린 나라를 찾기 위해 떨쳐 일어나 많은 조선인이 목숨을 던졌으며, 그러한 민족의 여망이 집결돼 임시정부 수립으로 이어졌다면 그때를 대한민국의 출발점이라고 하여 무슨 문제가 있을까. 더욱이 독립기념관장이란 직책에 있는 사람이라면 당연히 그렇게 생각하고 말해야 하지 않을까. 독립기념관은 정신을 말하고 선양하는 기관이지 않은가.
김 목사의 블로그엔 남의 의견을 비는 형태로 여전히 건국절을 옹호하는 글이 올라와 있다. 조삼모사나 견강부회로 자리보전에 연연하는 것은, 3ㆍ1운동에 기독교인이 얼마나 많은 피와 눈물을 흘렸는지 알만한 사람이 할 행동이 아니다. 독립기념관장직을 사퇴하고, 개인적으로 찬성하지 않지만, 차라리 아프가니스탄 같은 곳으로 선교를 떠나는 것은 어떤가.
안치용
아주대 융합ESG학과 특임교수ㆍ전 경향신문 기자, 한신대 M.div 및 신학박사 과정 수료. 협동조합언론 가스펠투데이 기고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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