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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둑집단보다 못한 교회 거버넌스
도둑집단보다 못한 교회 거버넌스
  • 안치용
  • 승인 2024.07.29 23:3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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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G전문가 안치용의 한국 교회 톺아보기]

다른 종교 성직자들과 교류가 잦은 목사와 대화할 기회가 있었다. 그 목사는 신부ㆍ승려와 숙식을 함께 하는 친밀한 교류 경험 중에 의사결정과 관련하여 이야기를 나눈 일화를 소개했다.

신부가 가톨릭에서는 신도들이 토론하고 의견을 모아오는 것이 가능하지만 결정은 신부가 하고, 모두 승복한다고 말하자, 승려가 복잡하게 뭐 그런 걸 해요?”라고 대꾸하며 웃었다고 한다. 그 목사는 개신교에서는 당회, 제직회, 공동의회 등 의견수렴 절차가 많아서 목사가 마음대로 하지 못한다고 말했고, 신부와 승려가 힘들어서 그런 걸 어떻게 하느냐고 반응했다고.

우리나라 대표적인 세 종교의 의사결정 구조를 단순화해 이해한 장면이다. 의사결정 구조를 요즘 유행하는 말로 바꾸면 거버넌스이다. 즉 좋은 거버넌스의 핵심은 바람직한 의사결정이다. 여기서 바람직하다, 구성원의 이익을 대변하고 침해하지 않으며 특정한 내부 구성원의 이익을 위해 다른 구성원의 이익을 훼손하지 않아야 한다는 의미이다. 당연히 이것으로 끝나서는 안 된다. 구성원 전체의 이익 추구와 침해 방지가 사회 전체의 이익, 즉 공공선과 크게 보아 일치하는 방향에 있어야 한다.

 

The Captured Thief Alfred Dehodencq (French, 1822-1882)
The Captured Thief Alfred Dehodencq (French, 1822-1882)

 

<장자>에서 전하는 유명한 도둑 도척(盜拓)이 말한 도둑의 5가지 도에서 그 예를 볼 수 있다.

 

도둑질하러 남의 집에 들어갈 때 무엇이 있는지 알아맞히는 것이 성(), 남보다 먼저 들어가는 것이 용(), 남보다 나중에 나오는 것이 의(), 도둑질해서 좋은 것과 아닌 것을 아는 것이 지(), 훔친 것을 균등하게 나누는 것을 인()이라고 하며, 이 다섯 가지를 갖추지 못하고 큰 도적이 된 자는 없다(妄意室中之藏 聖也, 入先 勇也, 出後 義也, 知可否 知也, 分均 仁也. 五者 不備而能成大盜者).”

 

도역유도(盜亦有道)로 알려진 도둑의 도이다. 성을 빼고 나머지 네 덕목은 어느 공동체에 적용해도 바람직해 보인다. 入先, 出後, 知可否, 分均은 의사결정의 핵심 사안으로, 도척의 제안을 따른다면 저절로 좋은 거버넌스가 달성될 것 같다. 문제는 이 집단의 존립 목적이 공공선에 배치된다는 것으로 의미는 다르지만 사법용어인 독수독과를 떠올리게 한다.

교회 등 종교집단의 거버넌스엔 또 다른 고려사항이 있다. 종교 자체의 논리에 빠져 기이한 방식으로 공공선을 침해한다면 사교로 지탄받는다. 로마에서 초기 기독교가 사교로 핍박받은 역사를 회고할 때 사교 판정이라는 게 더러 애매할 순간이 있긴 하다. 그럼에도 사회는 건전한 양식으로 종교성과 공공선 사이의 상충을 이해하려고 한다.

이 상충이 일어나는 영역이 아마 도역유도에서 말한 것과 다른 내용의 성()일 것이다. 교회의 좋은 거버넌스에서는, 내부 구성원을 기준으로 한 것과 사회를 포괄한 것 다음에, 아니 가장 먼저 성이 고려되어야 한다. 거버넌스의 수평적 효과성ㆍ효율성과 함께 수직적 정당성이 뒷받침되어야 한다는 뜻이다. 교회의 거버넌스는 그래서 더 힘들다. 의사결정의 고려요소가 많고 우선순위가 다르기 때문이다.

앞의 일화로 돌아가면, 개신교가 가장 민주적이고 평등한 의사결정 구조를 지닌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교회생활을 오래 한 사람이나 교역자들은 민주적 외양의 기구가 실제로는 민주적으로 작동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안다. 민주주의에서 절차적 정당성의 의의가 크지만 절차가 민주주의의 본질은 아니다. 게다가 교회 민주주의가 절차적 정당성을 엄격하게 지킨다고 보기도 힘들다. 독단적 의사결정에 민주적 외피를 씌우는 교묘한 장치일 때가 많다.

크게 보아 개신교 교회의 의사결정 구조는 과두제와 흡사하다. 과두제는 배제를 근간으로 한다. 교회에 성이 있다고 우기기도 힘든 상황이라고 할 때 지금 적잖은 교회의 거버넌스는 도척이 말한 도둑집단의 거버넌스에도 못 미친다고 말해 과언이 아니다.

 
 

안치용

아주대 융합ESG학과 특임교수ㆍ전 경향신문 기자, 한신대 M.div 및 신학박사 과정 수료. 협동조합언론 가스펠투데이 기고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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