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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치용의 프롬나드] 송구영신(送舊迎新) 없이 송구영신하다
[안치용의 프롬나드] 송구영신(送舊迎新) 없이 송구영신하다
  • 안치용 / 한국CSR연구소장
  • 승인 2018.12.30 17:3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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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워도 너무 춥다. 머리에 정전기가 일든 말든, 패딩에 달린 후드를 뒤집어쓴다. 전철역에서 집으로 가는 동안 나처럼 한껏 웅크린 사람들 사이에서 맨살에 짧은 치마를 입고 호기롭게 걸어가는 젊은 여자 두 명과 스친다. 친구로 보이는 두 사람은 웃옷도 모자라게 입은 듯하다. 추위는 청춘을 피해가는 것일까.

 

요즘 여성의 입성에 관해 여성과 남성 양쪽에서 각각 어떤 의미를 부여하는 추세이긴 하다만, 두 사람과 조우에서 나는 특별한 의미를 파악하지는 못 하였고 그저 한기가 중첩되는 기분을 느꼈다. 집에서 반겨주는 개들의 입성에선 온기를 느낀다. 정말로 개를 껴안기 좋은 계절이다.

 

타고난 입성으로 치면 북극곰만한 게 있을까. 기후변화의 상징물이 되어 전례 없는 주목을 받고 있는 생명체. 이런 식으로 세월이 흐르면 아마도 내가 죽기 전에 북극곰이 북극에서 종적을 감추는 사태를 목도하겠지. 북극에서 얼음이 사라지는 그 짧은 동안에, 북극곰이 북극어()’로 진화할 수는 없으니, 장차 특별한 보호시설에 수용된 북극곰들이 그 종의 명맥을 이어가겠지. 마음 아픈 북극곰의 운명과 무관하게 나는 가끔 내가 곰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그리하여 겨울에는 동면하는. 그런 생각 중에 선잠이 들어 내릴 역을 놓쳤다. 아무리 술에 많이 취해도 내릴 역에서 귀신같이 눈을 번쩍 뜨는데, 이상한 일이다. 일요일의 외출이라 약간 방심했고 서둘러 나갔다 오느라 커피를 먹지 못해서 빚어진 사고가 아니었을까. 그렇기도 하고, 추운 한데서 온화한 찻간으로 들어오면서 몸이 노곤해지고 ()카페인과 맞물려 선잠이 깊어졌을까.

 

멸종을 앞둔 북극곰이 동면하는 이 시기는 연말연시라는 인위적인 구분의 시기와 겹치고, 나는 동면 대신 봄이 오기 전에 해놓아야만 하는 일의 목록을 들여다본다. 이제 생애의 절반을 넘겼을 나의 개들은 이 추위 속에서도 산책을 나가야 한다며 보챈다. 한 해를 보내며 한 살의 나이를 더 먹는다고, 그만큼 성숙하고 지혜로워지는 게 아니라는 걸 알 만큼은 나이를 먹어서, 반복되는 우둔에 자신을 탓하지 않게 된 것은 다행이다. ‘지난 1은 언제나 가장 최선일 때가 본전이다. 사람이 하는 일이 그렇다.

 

새 해라고 전 해와 많이 달라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 또한 내 개들의 나이 또래에 도달한 인간에게 주어진 깨달음이라면 깨달음이다. 해가 떠나듯이 갈 것은 알아서 간다. 김광석 노래에서는 떠나보내고” “떠나오고를 절절하게 그린다만, 서른 즈음에 하는 생각이 아닐까. 그냥 때가 되어 떠나간다. 설렘을 바라지는 않고, 다만 한 해를 맞이하며 무기력을 성숙이라고 패배감을 지혜라고 우기지는 않게 되기를 기원한다. 늘 인간에겐 은총이 필요한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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