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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평] 판데믹에서 가치와 교훈을 찾는 긍정의 해석학
[영화평] 판데믹에서 가치와 교훈을 찾는 긍정의 해석학
  • 지승학 l 영화평론가
  • 승인 2020.03.31 16: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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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코틀랜드 출신의 사회문화인류학자였던 제임스 조지 프레이저가 쓴 『황금가지:비교종교학연구(The Golden Bough: A Study in Comparative Religion)』(1890년 출간)는 누군가를 죽여야만 완성되는 기이한 사제직 계승 이야기로 시작된다. 그 규칙은 고대 그리스나 로마에서도 찾아볼 수 없을 만큼 잔인한 것이어서, 한 시대의 역사, 제도권 하에서는 설명될 수 없는 원시적인 이야기로 이해되기도 한다. 하지만 이 기이한 규칙은 우리 인류사에 없어선 안 될 운명적인 요소를 함축하고 있는데, 그것은 신성과 신앙 그리고 주술이다. 

그 중에서 주술은 인간의 두 가지 사유원리를 기반으로 한다고 프레이저는 설명한다. ‘유사법칙’과 ‘전염법칙’이 그것이다. 유사법칙의 기본 문법은 ‘원인과 결과는 서로 닮아있다’는 원리를, 전염법칙은 ‘한 번 접촉한 사물끼리는 물리적으로 멀리 떨어져 있어도 계속 상호작용을 한다’는 원리를 담고 있다. 이 모두를 통틀어 ‘공감주술’이라 말하기도 한다. 사실 멀리 떨어져 있어도 상호작용이 가능한 ‘공감’의 원리는 먼 거리를 어떻게든 좁히길 원했던 인간의 ‘거리 욕망’에 기인한다. 

독일의 실존주의 철학자 하이데거(1889~1976)는 이를 ‘거리의 정복’이라고도 말했는데, 그에 의하면 이로써 우리는 원거리 통신기술이나 빠른 운송수단 등을 발명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산업혁명 이후 기술문명 대부분은, 이런 인간의 오랜 욕망을 충족시키기 위해 태어난 것들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편으로는 마치 이런 욕망을 견제하기 위한 것인 양, 가까이 하는 것 즉 만지는 것을 금지하는 소위 ‘Nolime Tangere(나를 만지지 말라)’의 기독교적 율법이 공존하기도 한다. 어쩌면 이 명령은 인간의 거리 정복 욕망을 견제하는 사회적 금기의 발현일지도 모른다. 

그런데 잘 알다시피 지금의 전염은 의학적·생물학적 분야에서만 제한적으로 다뤄지고 있다. 하지만 거짓소문, 가짜뉴스의 유포, 사회적 소요를 일으키는 행위의 확산 등도 모두 전염현상이라고 할 수 있는 것들이다. 나아가 감정이나 생각 등 정서적인 것과 관념적인 것조차 전염현상으로 설명될 수 있다. 오히려 전염현상은 지극히 일상적인 것으로, 특정 분야에 국한된 것이 아니다.

게다가 이런 포괄적인 역량을 함축하고 있는 ‘전염’은 생물학적 영역에서부터 인류학적 영역에 이르기까지 오로지 부정적인 것으로만 인식돼 왔다. 이유는 의외로 단순하다. 통상적으로 전염은 질병으로 대표되는 ‘악’한 현상, 신의 저주, 재앙적 종말의 징조 등으로만 받아들여졌기 때문이다. 사실 전염은 ‘좋은 것’, ‘선한 것’들의 확산에서부터 혁신의 전파, 민주적 여론 형성, 한류에 이르기까지 긍정적인 역량 또한 가지고 있는 것이다. 

 

전염을 중립적 시선으로 본 <컨테이젼>

어떻게 보면 전염은 현대사회의 국가 경쟁력을 좌우하는 주요 작동방식이라고도 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전염에 대한 인식은 부정적이다. 여러 문학적 서사의 원천이 대부분 인간의 불행이듯, 전염에 대한 부정적 인식 역시 다양한 문화사의 원천에 속한다. 심지어 현실에서의 부정적 인식이 고스란히 적용돼 영화에 그대로 확대, 재생산되기도 한다. 좀비 바이러스나 악령의 전이 등을 다루는 영화 장르는 전염에 대한 부정적 인식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문법을 주로 차용한다. 그러나 이런 부정적 인식에서 벗어나고자 전염을 중립적인 시선으로 다루는 영화가 있다. 스티븐 소더버그 감독의 <컨테이젼>(Contagion, 2011)이다.

 

 코로나19 전염병이 팬데믹으로 선포된 현재, 이 영화에 쏟아지는 관심은 상당하다. 그 이유는 현재 우리의 세상을 정조준해 마치 예언서처럼 각각의 사건을 담아내고 있다는 데 있다. 그리고 전염현상을 부정적인 시선에서 중립적인 시선으로 바꾸려는 의지가 보이기도 한다. 그런 점에서 이 영화는 좀비나 악령, 종말 등의 소재로 부정적인 전염인식을 인용했던 여타 영화들과는 다르다. 서사의 주제가 전염병을 다룬다는 점에서는 같지만, 그것이 재현하는 사건의 시선 자체는 완전히 다르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좀비 바이러스가 창궐하는 영화 혹은 악령의 전이, 묵시적 종말을 다루는 영화가 ‘영웅 서사’로서 ‘선악의 대결’ 구조를 가지고 있다면, <컨테이젼>은 ‘불안 서사’로서, 현실을 냉정하게 관찰하려는 ‘키노 아이(kino Eye)’ 구조의 영화라고 할 수 있다. 특히 이 영화는 그 불안 서사 속에 질병이 유발할 수 있는 최대치의 현실적인 문제들을 결집시켜 보여준다. 등장인물들의 행태학적 신념들, 책임자의 치료법 선택 과정, 질병을 접했을 때 취하게 되는 대중들의 사회적인 합법과 불법의 편차, 이에 동반되는 권력관계 등… 여러 요인들이 그 서사 안에 고스란히 녹아있다. 

그렇게 이 영화는 질병에 의해 벌어지는 사회문화적 시스템의 취약성과 그 혼잡도를 대립구조가 아닌 관찰을 통해 우리 앞에 고스란히 펼쳐놓는다. 이로써 이 영화가 표현하는 전염현상은 접촉과 금기, 죄악과 멸망으로 점철된 기존의 부정적 인식과는 달리, 우리가 새롭게 도출해야 할 제3의 관점을 보여주고자 한다.

 

‘전염’의 부정적 인식은 종교 교리의 맥락과 닿아

 

눈치챘겠지만, ‘전염’의 개념이 부정적인 것으로 돌변한 이유는 최초의 교회 지도자들부터 교부 철학자들에 이르기까지, 악의 확산을 기술하기 위해 차용돼 온 종교 교리의 맥락 때문이다. 프레이저의 ‘전염법칙’은 여전히 기원적이고 근원적 차원에 속해 있지만, 그 개념만큼은 어느 순간 신이 내린 벌, 재앙으로 각색된 것이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상황이 역전돼, ‘전염’에 대한 과학적 인식과 종교적 교리의 대립이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19세기 파스퇴르를 중심으로 과학적 인식이 활발히 규명되고 구축되는 동안, 군중·범죄·영지주의를 중심으로 종교적 교리의 비중 역시 높아졌다. 

 

긍정과 부정이 아닌 순기능적인 제 3의 관점 필요

그 후, 급기야 혼성적 속성으로서 ‘도덕적 전염’이라는 개념이 발명돼 19세기 범죄학, 정신분석학, 사회심리학의 기반을 이루기도 했다. 변화무쌍한 전염의 이런 이합집산은 전염의 통제 및 소멸을 위해 마련한 학교나 병원, 감옥이 전염병의 진원지가 돼버릴 수도 있다는 지금의 현실로도 충분히 재입증된다. 컴퓨터 바이러스조차도 사이버스페이스의 유토피아와, 이를 위협하는 디스토피아적 속성을 동시에 보여주지 않던가. 

마찬가지로 <컨테이젼> 속 전염 역시, 긍정적·부정적 인식의 공존 즉 인간의 불행과 공포, 디스토피아적 운명에 인간의 헌신과 유토피아적 상상력이 슬쩍 개입한 엔트로피적(Entropic) 상태로 등장한다. 이것은 전염법칙의 새로운 부활, 즉 꽤 긍정적인 신호라고 볼 수 있다. 특히나 여기서는 전염을 통해 그간 덮여있던 인간의 무지와 사회적 은폐물들을 폭로할 수 있게 됐다는, 즉 전에 없던 새로운 탐지작업의 성과도 나타나 있다.

 

바로 이런 전염의 폭로속성이, 실제로 오늘날 한국 사회에서 가장 긍정적인 효과로 나타나고 있다. 그것은 근대적 사회체계 속에 공존하고 있었던 어떤 주술적 집단과 인간의 모든 고질적 비이성을 ‘접촉’을 통해 밝혀내기 시작하면서 급속히 부각됐다. 나는 이런 ‘폭로적 속성’의 사회적 탐지작업이 전염의 순기능, 아니 부정적 개념에서 벗어날 수 있는 제3의 관점이라고 생각한다. 긍정·부정을 나누기보다 전염의 순기능에 대해 직시해 보는 것. 즉 사물에 손을 대어(접촉) 관련 정보를 알아내는(폭로) 탐지작업을 ‘사회를 향한 긍정적인 해석학’이라고 명명하는 것. 이것이야말로 우리가 처한 팬데믹(Pandemic), 재앙적 상황에서 건져낼 수 있는 소중한 가치와 교훈이 아닐까. 

그래서인지, 요즘 내 눈에 전염현상은 주술적인 요소와 과학적 요소와 강렬한 시너지 효과로서, 사회적 순기능으로 비상할 준비를 마친 ‘사이코메트리(Psychometry)' 그 자체로 비치곤 한다.  

 

 

글·지승학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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