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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은 차고, 미꾸라지는 살찌고
이슬은 차고, 미꾸라지는 살찌고
  • 이상엽 l 사진작가
  • 승인 2022.09.30 18:1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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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변화로 새로 쓰는 24절기 - 10월 한로

한국의 가을은 대체로 맑고 찬 느낌이었다. 물론 얼마 전까지는 말이다. 그런데 장마도 끝난 추석 이후 태풍이 자주 찾아오고 있다. 여름에 장마와 태풍을 동시에 겪던 과거와 달리 얼마 전 찾아온 역대 3위급의 ‘힌남노’는 가을 태풍이었다. 시간당 111mm 폭우와 20m 파도를 일으킨 힌남노는 우연인지 모르겠지만 1959년 태풍 사라, 2003년 태풍 매미와 함께 가을 태풍이라는 공통점이 있었다. 그럼 우리나라는 가을 태풍이 강력한 것인가?

 

제천 충주호에서의 풍광이다. 10월 가을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산천은 울긋불긋 물들었다. 

마침, 국내 기상 연구자들이 분석한 데이터가 있다. 1954년부터 2019년까지 66년간 우리나라에 영향을 준 태풍 235개를 분석한 결과다. 2002년을 기준으로 이전에는 가을 태풍이 차지하는 비중이 20%였지만 2002년 이후에는 31.6%로 증가했다. 가을 태풍의 강도도 더 강해진 것이다. 최대 풍속 역시 2011년 이후 가을 태풍이 더 강력했다. 가을 태풍이 이전보다 더 잦아지고 또 더 강해지고 있다는 결론이다. 그럼 가을 태풍이 더 자주 오는 원인은 뭘까? 그것은 북태평양고기압의 변화 때문이다. 

가을 태풍의 위력이 강해진 것은 해수면 온도 상승, 특히 여름철 수온이 상승하고 있기 때문인데, 바다의 수온이 상승하면 태풍이 에너지로 사용할 수 있는 에너지가 더 늘어날 수밖에 없다. 기상청은 우리나라 해역의 7월 평균 수온은 지난 2010년 이후 매년 0.34℃씩 상승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또한 수온은 이보다 상승 폭이 더 커서, 0.4℃ 가까이 상승하는 것으로 확인됐다고 한다. 우리나라의 해수면 온도 상승 속도는 전 세계 평균보다 2배 이상 빠른 것으로 나타났다. 수온이 상승하는 속도는 해를 거듭할수록 빨라지고 있다. 기상청 역시 수온 상승이 한두 해에 그치는 게 아니라, 계속되는 원인은 기후변화라고 지적한다. 바다 생태계의 변화뿐 아니라 태풍의 발생까지 영향을 미친 것이다. 

그럼 이번 달인 10월에도 태풍이 올까? 결론적으로 상륙하지 않지만, 꾸준히 태풍이 온다. 재작년인 2020년에는 10월만 7개의 태풍이 발생했다. 우리나라에는 크게 영향을 미치지 않았지만, 라니냐의 영향으로 필리핀해상의 수온이 식지 않으면서 계속 태풍이 발생하고 있다. 최근에 태평양 수온을 연구하는 사람들은 조만간 11월 태풍을 보게 될 것이라고 말한다. 이쯤 되면 가을 태풍이 일상이 되는 날도 머지않아 올지 모른다.

 

제천의 청풍문화단지의 건축물들은 재현한 모조품들이 아니다. 충주호 건설로 수몰되는 마을의 유적을 그대로 이전한 것이다. 

찬 이슬 맺히는 한로의 제천

기후변화로 인해 절기가 바뀌다 보니, 여름이 팽창해 가을을 밀어내고 있다. 가을 기후가 지속하는 시기는 큰 변화가 없지만 대체로 초겨울까지 간다. 그래서 10월은 한로가 한 달 내내 차지한다. 한로는 24절기 가운데 17번째 절기로 ‘찬 이슬’이 맺히기 시작하는 시기라는 뜻이다. 이 찬 이슬이 서리가 되면 다음 절기 상강이 된다. 이때쯤이면 하늘에는 기러기가 날아오는 것을, 길가에는 들국화가 피는 것을 본다. 이때는 추수를 끝내야 하니 ‘오곡백과’의 수확이 이뤄진다. 

하지만 쌀 재고가 넘치고 햅쌀을 팔아야 하는 농민들의 시름은 깊다. 우리나라의 쌀 자급률은 의무 수입을 뺀다면 100%에 육박한다. 생산을 많이 해서가 아니라 적게 먹어서 발생한 수치인 것이다. 과일도 10월이 풍성할 시기인데, 9월에 이미 가을 과일이 쏟아져 나온 터라 10월에는 변변한 것이 없고 오히려 체리, 오렌지 등 수입 과일이 넘친다. 농부들에게는 우울한 이야기지만, 그래도 이 나라 산천이 단풍으로 물드니 나들이하기 좋은 계절임에는 분명하다. 그래서 요즘 귀농귀촌으로 각광받는 제천으로 갔다. 확연하게 풍광이 수려한 지방임을 보여주는 제천은 도로의 발전으로 그리 멀지 않은 오지가 됐다. 

 

한반도는 10월 단풍으로 물든다.  제천은 한반도 남부 지역에서 가장 먼저 단풍이 드는 지역이다. 

하필 추적추적 가을비가 내릴 때 도착한 곳은 청풍이다. 1983년 충주댐 건설로 제천의 청풍면, 후산리, 황석리 등이 수몰되면서 마을의 문화재들이 사라질 위기에 처하자 청풍문화단지에 복원해 놓았다. 부슬부슬 내리는 비를 맞으며 걸었다. 한벽루에 오르니 한눈에 충주호가 들어온다. 수몰은 슬프지만, 풍광은 멋지다. 주변의 숲은 울긋불긋하게 물들었고, 특히 단풍은 불이 붙은 듯하다. 

단지 안에 향교, 관아, 민가, 석물군 등 43점의 문화재를 옮겨 놓았는데 민가 4채 안에는 생활 유품 1,600여 점이 전시되어 있다. 고려 때 관아의 연회 장소로 건축된 청풍 한벽루(보물)와 청풍 석조여래입상(보물) 등 보물 2점과 청풍부를 드나들던 관문인 팔영루(충북유형문화재), 조선시대 청풍부 아문인 금남루(충북유형문화재), 응청각(충북유형문화재), 청풍향교(충북유형문화재) 등 건축물이 들어서 있다. 마치 충북 건축물의 박물관이라고 할 정도다. 하지만 한로에 즐길 것이 단풍만의 아니다. 이왕 여행을 왔으니 입맛도 살려봐야 할 일이다. 

마침 그런 것이 여기 제천에 있다. 한로에 서민들은 이맘때 추어탕을 즐겼다. <본초강목>에는 미꾸라지가 양기를 돋우는 데 좋다 했고, 가을에 누렇게 살찌는 가을 고기라 하여 미꾸라지를 추어(鰍魚)라 했을 것이다. 충북의 농부들이 제초제 대신 우렁이 농법을 쓰면서 미꾸라지 생산량도 늘었다. 이렇게 건강한 미꾸라지에 된장과 대파를 더해 만들어낸 대파 추어탕이 지역 향토음식이 됐다. 여기에 미꾸라지 고추 튀김이나 복숭아를 넣은 우렁이 초무침이 곁들여지면 금상첨화다. 가을비에 젖은 몸이 뜨끈해진다. 

 

기후학살 시대, 시민행동이 절실하다

 

물태리 석조여래입상은 보물 제546호다. 고려 초기 불상으로 대광사라는 사찰 입구에 있던 것을 수몰로 인해 현재의 위치로 옮겨놓았다.

힌남노 다음으로 다시 14호 태풍 난마돌이 왔다. 우리는 영남지역만 영향을 받았지만, 일본은 최대 풍속이 초속 30m로 51년 관측 이래 4번째로 강력한 태풍의 맛을 봤다. 1명이 죽고 82명이 다쳤다. 사상자가 적은 것은 워낙 대피 훈련이 잘 돼있는 탓이고 문제는 피해액이 폭발적으로 는다는 것이다. 2019년 87명의 목숨을 앗아간 태풍 하기비스로 인한 일본의 피해는 20조 원에 달했고, 이중 5조 원은 기후변화로 인한 피해로 봤다. 그런데 일본뿐 아니라 허리케인이 강타한 푸에르토리코는 섬 전체가 암흑이 됐다. 

<뉴욕타임스>는 “허리케인과 기후변화 사이의 연관성은 해가 갈수록 명확해 지고 있다”라며 지난 40년간 허리케인이 더 강력해지고 있다고 언급했다. 신문은 지난 2017년 미국 일부 지역에서 50인치 이상의 비를 뿌린 허리케인 하비의 경우 온난화 탓에 강우량이 38%나 늘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이 정도는 약과였다. 파키스탄은 우기 내내 지속한 폭우와 함께 히말라야의 빙하가 녹아내린 물로 국토의 1/3이 잠겼다. 아직도 농업이 25%의 경제 비중을 지닌 파키스탄의 농촌피해는 막대해서 소 80만 마리가 죽고, 양파, 쌀, 옥수수에 이르기까지 작물의 상당 부분이 유실됐다. 총 피해액이 55조에 달해 국제통화기금에 구제금융을 신청하기에 이르렀다. 

사태가 너무 심각하자 안토니오 구테흐스는 유엔 총장은 현장을 방문해 “나는 전 세계에서 수많은 재앙을 봤지만, 이 정도 규모의 ‘기후학살’을 본 일 없다”라고 했다. ‘기후학살’이라? 이제 기후 불평등을 넘어 학살이 등장한 것이다. 이 사태가 기후변화로 인한 결과지만 온실가스 배출에 대해 파키스탄은 단 1%의 책임도 없다. 우리나라를 비롯해 전 세계 주요 29개 핵심국(G20)이 80% 이상의 온실가스를 배출하고 있다. 

어쩌면 이제, 국가의 윤리적 참여는 기대하기 어려워진 것인지 모른다. 지구적인 박애와 미래 세대를 위해, 시민들의 직접행동이 더욱 절실해지고 있다. 

 

 

사진/글·이상엽
다큐멘터리 사진을 찍고 논픽션 글을 쓴다. 우리 땅 변경을 기록한 사진으로 2015년 <일우사진상>을 수상했고,『파미르에서 윈난까지』(현암사)는 2011년 올해의 우수문학도서로 선정되기도 했다. 늘 기록은 힘이 세다 믿으며 예술노동자로 산다. 지금은 비정규노동센터의 이사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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