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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극곰이 고생한다
북극곰이 고생한다
  • 이상엽 l 사진작가
  • 승인 2022.05.02 0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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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변화로 새로 쓰는 24절기 - 5월 소만/망종

5월 초순, 마이산 가는 길은 더웠다. 태양은 황경 60도에 걸리고 풍부한 햇빛을 지상에 내린다. 바야흐로 만물이 생장하는 시기다. 24절기로 볼 때 소만이다. 기존의 절기에 비해 거의 3주 정도 빨라졌다. 지금 찾아가는 전북 진안 고원에 위치한 마이산은 노령산맥과 소백산맥 사이에 위치하며, 금강이 북진하고 섬진강은 남하한다. 위치상으로 경북과 충남지역을 이어주는 교통의 요지임을 알 수 있다. 카메라를 걸치고 그저 신록을 즐기며 걷기 좋은 길이다. 

길 양쪽으로 논에 가득한 물은 눈부시게 태양광을 반사한다. 조만간 모판을 가져와 모내기를 할 것이다. 농부들은 1년 12개월 내내 논농사 준비를 하지만 본 게임은 사실 4개월 남짓이다. 더운 여름에 벼가 무럭무럭 자라 초가을이면 영글어 우리가 먹는 쌀이 된다. 벼라는 풀의 생애는 그렇게 길지 않다. 하지만 그저 논에 심어준다고 자연의 빛과 바람만으로 품질 좋은 쌀이 되는 것은 아니다. 흙의 양분을 제대로 흡수해야 하는데, 오늘날 벼의 생장을 돕는 것은 인공적인 비료다. 

진안 마이산으로 가는 길이다. 5월초는 이제 완연한 여름이다. 세상이 푸르다. 기후변화로 인해 이제 여름은 가장 긴 계절이 됐다. 

인공비료가 불러오는 불평등과 기후변화

얼마 전 코로나19로 인한 세계적인 물류 대란이 났을 때, 우리나라에서 특히 문제가 됐던 것은 자동차에 사용하는 ‘요소’수였다. 이 ‘요소’는 자동차에만 필요한 게 아니라, 전통적인 농업 생산에 더욱 필요한 존재다. 비료생산에 중요한 성분인 요소는 화학비료의 핵심이다. 국내 단일비료 공급량의 80%를 차지하고 있고, 복합비료 제조 시에도 요소가 약 35% 들어간다. 농업용 요소 역시 중국 수입의 의존도가 48%로 굉장히 높은 편이다. 국내에서는 생산되지 않기 때문에 전량 수입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이 때문에 중국발 요소 대란으로 요소비료 확보가 급선무가 돼버렸다. 사태의 장기화 우려로 농번기를 대비해 요소비료를 미리 비축하려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이에 일부 지역에서는 농가당 10포 미만으로 판매를 제한하기도 했다. 요소비료의 품귀 현상은 먹거리 문제로 이어진다. 요소비료가 식물 생장에 큰 영향을 주기 때문에 비료가 부족하면 상품성이나 생산량이 저하될 수 있다. 작황 상태가 좋지 않을 경우 결국 가격 상승으로 연결되면서 먹거리 물가 상승 압력까지 받는다.

요소 생산에는 암모니아 성분이 필요하다. 20세기 초반 하버-보슈법에 의해 저렴한 암모니아 합성법이 개발됐다. 공기 중의 질소를 사용하니 무한정 공짜일 듯하지만, 수소도 필요해 막대한 화석연료가 쓰인다. 오늘날 암모니아 제조에 들어가는 천연가스는 생산량의 3~5%나 된다. 다시 말해 현대 농업은 흙에 있는 양분 외에도 또 다른 한정된 자원을 소비하고 있는 셈이다. 또한 암모니아 제조 과정에서 이산화탄소가 대량으로 발생한다. 농업이 친환경적이라는 말은, 실상 일부만 맞는 셈이다.

 

겨우내 묵었던 논을 뒤엎고 물을 댔다. 이제 곧 모내기가 시작될 것이다. 하지만 지력은 예전 같지 않다. 그래서 이제 상시적으로 인공 비료를 줘야 한다. 

농업의 가장 중요한 지력 즉 토양의 질은 늘상 우리를 괴롭혀 왔다. 유럽은 특히 19세기 들어 엄청나게 인구가 늘면서 농업 생산량이 이를 감당하지 못했다. 이때 남미를 탐험하던 알렉산더 폰 훔볼트는 페루와 볼리비아 해안에서 바다새 배설물로 만들어진 섬들이 수도 없이 존재하는 것을 발견했다. 이를 ‘구아노’라고 한다. 이미 원주민들은 이 구아노를 비료로 이용해 농업에 쓰고 있었고, 유럽인들은 토양의 황폐화를 복원할 최고의 자원을 발견한 것이다. 구아노 덕분에 유럽과 미국은 지력을 회복할 수 있었고 생산력은 비약적으로 늘었다. 

하지만 구아노는 원주민과 중국인 쿨리들에게는 재앙이었다. 서구 자본가들의 무자비한 착취가 이어진 것이다. 구아노는 급격하게 줄어들었고 남아있는 자원을 쟁취하기 위해 페루-볼리비아와 칠레가 구아노 전쟁(1864~1966)을 일으켰다. 서구 제국주의 세력의 지원을 받았던 칠레가 승전해 볼리비아의 해안을 점령 소유하게 되면서, 볼리비아는 해안이 없는 내륙 국가가 돼버렸다. 농업은 선진국이나 개발도상국가가 비슷하게 운영될 듯하지만 여지없이 착취의 고리로 이어진다. 또한 이런 모순은 생태 불평등의 현실화를 보여주며 이것을 ‘생태제국주의’라 부른다. 북반구의 남반구 착취는 경제적인 문제 뿐 아니라 기후변화에 대한 책임마저 전가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내 기억에, 요즘처럼 먹을 것이 넘치는 때는 없었다. ‘라테는 말이야’를 들먹이는 듯해 미안하지만, 80년대는 수입농산물도 없었고 남는 농산물도 없었다. 다들 아쉬운 상태에서 부족한 듯 먹었으니 비만이 사회문제가 될 수 없었다. 많은 생태학자들이 그 정도가 ‘지구적으로 적당한 생산’이라 한다. 오늘날 넘쳐나는 농산물은 실상 가난한 나라에서 빼앗은 것이고, 음식 쓰레기가 나온다면 기후변화를 일으킬 에너지 낭비라는 이야기다. 

 

순혈 북극곰은 동물원에만

 

 

동물원 물범이다. 찬 바다에 사는 물범은 이 나라의 여름이 너무 덥다. 차지는 않지만 미지근한 물속이 그나마 나은 듯하다. 

5월에 새로 들어온 절기는 망종이다. 원래 6월에 있었지만 지금은 5월 23일이면 망종 날씨다. 황경이 75도로 중천에 가까운 이때, 농부들은 엄청나게 바빠진다. 부지런히 모를 심고 보리를 거둔다. 오래전 보릿고개라는 이야기처럼 봄철 배고픔은 이 절기를 고비로 사라진다. 뿐만 아니라, 들에는 매실처럼 나무에 달린 과일들이 부쩍부쩍 자란다. 하지만 농민들의 수고를 모르는 도시사람들에게는, 그저 나들이하기 좋은 초여름일 뿐이다. 간만에 가족들과 동물원 나들이를 했다. 요즘은 나이 들어 그런지, 어릴 적 보던 동물원이 끌린다. 물론 동물권을 생각한다면 동물원은 사라지는 것이 좋겠지만, 반면 도시의 아이들이 자연 생태를 그나마 살짝 엿보는 공간으로 유의미함도 있다. 

 

북극곰은 고향이 그립다. 너무 더워 꼼짝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 같은 순혈의 북극곰은 조만간 동물원에서나 만날 수 있을지도 모른다.

동물원에서 가장 인기 있는 동물은 사실 정해져 있다. 고양이과의 대형 포유류인 사자와 호랑이가 으뜸일 테고, 거대한 몸집을 가진 코끼리나 기린이 그 다음 갈 듯하다. 나이가 들어도 이런 동물을 가까이서 보면 정말 신기하다. 그런데 참으로 이 땅의 기후와 어울리지 않는 동물이 있다. 바로 북극곰이다. 저렇게 추운 곳에서 진화한 거대한 동물이 이렇게 더운 날 어찌 견딜까? 아니나 다를까? 북극곰은 완전히 늘어져 미동도 하지 않고 있다. 

북극곰은 지구의 기후변화를 이야기하는 대표적인 동물이다. 널리 알려진 환경 다큐멘터리 영화 <북극의 눈물>에도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북극곰은 빙원을 돌아다니며 물범을 잡아먹는 완전히 북극에 적응해 진화한 동물이다. 그런데 그 북극곰이 기후변화로 인해 빙하가 녹으면서 먹이가 줄어들자 남하하기 시작했다. 특히 이누이트들이 고래 사냥을 하는 캠프를 점령해 인간의 쓰레기와 고래 고기를 먹는다. 그런데 북극곰이 이곳에서 사촌을 만났다. 바로 타이가 지역의 회색곰이다. 회색곰들은 기회변화로 인해 남쪽이 너무 더워지자 북으로 이동을 한 것이다. 여기서 만난 이 두 곰들은 어떻게 서로를 대했을까? 연애를 시작한 것이다.

사실 말과 당나귀의 혼혈인 노새는 생식능력이 없어 후손을 낳지 못한다. 말과 당나귀는 아주 오래전 분기해 염색체 수가 다르기 때문이다. 둘이 만나면 염색체 수가 홀수가 돼 자식을 생산하지 못한다. 그런데 북극곰과 회색곰은 분기한 지점이 3만 년 정도 밖에 되지 않아 염색체가 거의 동일하다. 그래서 이 둘 사이에서 태어난 혼혈인 그롤라 베어는 후손을 낳아 계속 번식을 이어가게 된다. 게다가 그롤라 베어는 완전 잡식으로 자연에서 생존력이 매우 우수함을 증명했다. 즉 타이가와 툰드라 지역에서 생존력이 높은 그롤라 베어가 북극곰과 회색곰을 제치고 우세종이 될 가능성이 있다. 

사실 인간은 기후변화로 진화하지 않을 것이다. 인간은 자연에 적응하는 방법으로 신체가 아닌 문화를 이용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자연계의 동물은 적응하는 방식, 즉 적자생존을 한다. 북극곰의 운명이 바로 그것이다. 이것은 어떤 의미일까? 기후를 변화시킨 인간에 맞서 진화하는 곰들의 전략은 그나마 다행인 것일까? 아니면 비극적인 종말의 전조일까? 가족들과 이들의 운명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동물원을 나올 때, 어쩌면 훗날 순혈 북극곰은 오직 동물원에만 있겠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기후변화는 우리 가까이에 있다. 

 

 

사진/글·이상엽
다큐멘터리 사진을 찍고 논픽션 글을 쓴다. 우리 땅 변경을 기록한 사진으로 2015년 <일우사진상>을 수상했고, <파미르에서 윈난까지>(현암사)는 2011년 올해의 우수문학도서로 선정되기도 했다. 늘 기록은 힘이 세다 믿으며 예술노동자로 산다. 지금은 비정규노동센터의 이사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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