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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디언>의 잃어버린 명예?
<가디언>의 잃어버린 명예?
  • 세르주 알리미 | 프랑스어판 발행인
  • 승인 2018.12.31 14:1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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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11월, 미 정부가 비밀리에 줄리언 어산지에 대한 기소 자료를 고지한 사실이 미 행정 당국의 실수로 공개됐다. 위키리크스의 설립자인 어산지는 자신의 신병이 미국으로 인도될 위협에 처해있다며 2012년부터 런던 주재 에콰도르 대사관에 망명해있는 상태다. 미국으로 가면 어산지는 간첩혐의로 무기징역을 살 수도 있고, 더 엄중한 처벌을 받을 수도 있다.(1) 이러한 상황에서 11월 27일, 영국의 중도좌파 일간지 <가디언>에서 ‘특종’ 하나를 내보낸다. 도널드 트럼프 대선 캠프의 전 선거대책본부장이었던 폴 매너포트가 2013년과 2015년, 2016년 세 차례에 걸쳐 런던에서 어산지를 만났다는 보도였다. 

2013년에는 트럼프 대통령이 아직 대선 후보로 나서지 않은 상황이기 때문에 이 같은 <가디언>의 보도로 세상은 더욱 떠들썩했고, 얼마 후에는 CNN과 MSNBC, <뉴욕타임스>까지 여기에 신나게 숟가락을 얹었다. 이 언론들이 어산지가 러시아 당국과 공모하여 힐러리 클린턴 후보 측에 불리한 정보를 내보냈다는 의심을 하는 만큼, 그가 트럼프의 측근을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는 것은 곧 트럼프와 푸틴이 오랜 기간 서로 결탁해왔다는 사실을 확인시켜주는 셈이 된다. 요컨대 어산지가 두 사람 사이에서 가교 역할을 해왔다는 것이다.

다만 한 가지 걸리는 건 매너포트와 어산지가 정말로 세 차례의 회동을 가졌느냐는 문제다. 우선 이를 의심하기는 쉽지 않다. <가디언>은 전 세계에서 존경받는 유력지로, ‘가짜 뉴스’ 고발의 최선봉에 서 왔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가디언>이 보도한 11월 27일 자 기사는 추측형 문장으로 쓰이지 않았다. 즉, 보도 내용을 ‘확신’하고 있었다는 말이다. 증거가 있으니 양측의 만남이 확실하다는 것인데, 무언가 미심쩍은 냄새가 난다. 우선 이 특종을 쓴 두 명 중 한 명인 루크 하딩은 『공모: 러시아는 어떻게 트럼프를 백악관에 입성시켰나?』(Flammarion, 2017)의 저자로서 어산지에 대해 개인적으로 불만을 키워왔다. 나머지 한 명도 페르난도 비야비센시오라는 이름의 에콰도르인으로, 라파엘 코레아 전 대통령이 어산지의 망명을 허락한 것에 대해 적극적으로 반대 입장을 표명해온 인물이다.

그런데 페르난도 비야비센시오의 이름은 곧 <가디언> 온라인판 기사에서 삭제됐고, 몇 시간 후에는 ‘매너포트, 에콰도르 대사관에서 비밀리에 어산지와 회동’이었던 원래의 기사 타이틀 끝에 ‘설’이라는 표현이 추가됐다. 두 사람의 만남 또한 ‘회동 확실시’라는 표현으로 처리됐다. 이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았던지 런던 주재 전 에콰도르 영사였던 피엘 나르바에스는 매너포트의 세 차례 방문에 대해 ‘사실무근’이라 반박했고, 위키리크스는 가디언에 대한 소송을 제기했으며 매너포트도 단호히 반박 성명을 냈다. 에콰도르 대사관의 방문 대장에는 그의 이름에 대한 그 어떤 흔적도 없었을뿐더러, 전 세계에서 가장 감시가 삼엄하고 가장 많은 촬영이 이뤄지는 그곳에서 매너포트의 출입 사진이 단 한 장도 나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미국의 글렌 그린월드 기자는 “대사관에서 줄리안 어산지를 은밀히 만난 게 폴 매너포트가 아닌 도널드 트럼프일 수도 있다. 아니, 그 자리에 블라디미르 푸틴과 김정은도 같이 합류했을 수 있다”고 일침을 놓으며 이번 사건을 정리했다(<더 인터셉트>, 11월 27일). 물론 얼마든지 가능한 일이지만 그럴 확률은 별로 없다. 이런 특종감을 <가디언>이 놓쳤을 리 만무하기 때문이다.  
 

글·세르주 알리미 Serge Halimi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프랑스어판 발행인

번역·배영란 runaway44@ilemonde.com
한국외대 통역대학원 졸업. 『22세기 세계』 등의 역서가 있다.

 

(1) Serge Halimi, ‘줄리언 어산지를 위한 자유’,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프랑스어판·한국어판 18년 1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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