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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하지 않은’ 주인공에 매료되다
‘착하지 않은’ 주인공에 매료되다
  • 류수연 | 인하대 교수
  • 승인 2020.08.31 1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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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의 평면적 성격과 악인의 입체적 성격

오랫동안, 대중서사를 장악해온 두 개의 주제는 바로 권선징악과 해피엔딩이었다. 반복적인 갈등과 개연성 없는 사건사고로 스토리를 이어나가는 막장드라마를 욕을 하면서도, 결말까지 들여다보게 만드는 힘 역시 여기에 있었다. 주인공을 해치려던 모든 ‘악’은 반드시 그에 합당한 처벌을 받을 것이고, 주인공은 마침내 ‘행복’을 쟁취할 것이다. 결말에 대한 이 굳은 믿음이야말로, 대중으로 하여금 고난의 스토리에 탑승할 수 있게 만드는 결정적인 안전망이었다.

이토록 당연한 결말을 지지하는 것은 다름 아닌 주인공의 성격이었다. 그 어떤 고난과 핍박에도 오뚝이처럼 일어서는 꿋꿋함과 그 어떤 유혹 앞에서도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 없을 것 같은 신념까지. 그것은 한결같은 평면성으로 점철된 주인공의 캐릭터를 형성했다. 그리고 어느 순간, 이런 평면적인 ‘착함’은 대중서사의 주인공이라면 마땅히 갖춰야 할 필연적인 덕목처럼 여겨지기도 했다. 우리에게 익숙한 ‘캔디형 주인공’이 바로 그들이다.

반면, 주인공을 괴롭히는 악한은 어떠했던가? 대부분의 경우 그들은 말도 안 되게 뛰어난 역량을 지닌 인물로 그려졌다. 개인적인 역량뿐만이 아니라 성공을 향한 야망이나 일에 대한 열정에서, 그들은 모두 주인공을 앞선다. 더구나 그들은 대부분의 경우, 노력형의 천재다. 하지만 객관적인 잣대로 볼 때는 완벽하기만 한 이들을 기다리고 있는 것은 오직 패배뿐이다. 그들을 망가뜨리는 것은 다른 무엇도 아닌, 바로 그들 자신의 끝없는 욕망이다.

그들 스스로는 끊어낼 수 없었던 욕망은 외부적인 힘(주인공의 승리나 복수)의 개입으로 차단된다. 따라서 그들의 패배는 또 다른 의미에서는 구원이다. 그 어떤 것으로도 채울 수 없는 욕망의 허기를 끊어낸 것이기 때문이다. 너무나 강력했던 악인이 속절없이 무너지는 개연성 없는 결말이 때로 모두의 찬사(?)를 받을 수 있는 이유도 바로 이 때문이다. 해피엔딩의 법칙은 악인에게도 예외는 아니었던 것이다. 주인공의 평면적 성격은 개과천선하는 악인의 입체적 성격과 대비되면서, 선의 완전한 승리를 가능하게 만들어주는 보증수표처럼 활용됐다. 

 

드라마<사이코지만 괜찮아>(상)와 <왔다! 장보리>(하) (출처: MBC/tvn 홈페이지)

 

착하지 않은 ‘먼치킨형’의 약진

그러나 2010년대 이후 대중서사는 완전히 달라졌다. 착하기만 한 주인공은 더 이상 매력적이지 않다. 아니, 오히려 대중의 분노를 사기도 한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주인공을 괴롭히는 악인에 매료되기도 한다. 2014년 MBC에서 방영됐던 <왔다! 장보리>를 떠올려 보자. 드라마 자체는 프로타고니스트인 주인공 장보리(오연서 분)의 해피엔딩과 안타고니스트인 연민정(이유리 분)에 대한 권선징악으로 마무리됐지만, 시청자를 매료시킨 진짜 승리자는 빌런(Villain, 악당)이었던 연민정이었다. 장보리는 기억 속에서 사라졌지만, 연민정은 지금까지도 많은 프로그램에서 회자되는 캐릭터로 살아남아 있다는 것이 이를 방증한다.

그 결과, 오늘날 한국의 대중서사에는 착하지 않은 주인공들의 약진이 두드러진다. 얼마 전 종영한 tvn의 <사이코지만 괜찮아>가 대표적이다. 여주인공인 고문영(서예지 분)은 타인의 감정은 물론 자신의 감정조차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는 인물이다. 그 때문에 일면 소시오패스처럼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드라마는 공감능력을 상실한 고문영보다 더 병들어 있는 세상을 고발한다. 사실 그녀가 공감할 수 없었던 것은 사람들의 가식과 부조리였기 때문이다. 선한 얼굴 뒤에 감춰진 편견이나 폭력에 분노하고 진실을 폭로하는 고문영의 말과 행동은, 오히려 통쾌함을 선사한다. 톱스타 김수현(문강태 역)의 복귀작이라는 것이 이 드라마의 초기 흥행을 견인했다면, 서예지가 열연한 고문영이라는 인물의 복합적인 성격이 중후반의 흥행을 견인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비단 드라마뿐일까? 보다 대중적인 장르인 웹 콘텐츠로 들어가면, 비련의 주인공은 점차 사라져가고 있음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이리 맞고 저리 맞으면서도 착한 얼굴로 눈물만 흘리는 비련의 주인공이란, 이제는 그저 ‘궁상맞은 인물’로만 치부될 뿐이다. 그 부재를 채워가는 것은 바로 ‘먼치킨’형 주인공이다. 완벽한 두뇌나 신체적인 능력, 혹은 그 둘을 모두 가진 주인공이 ‘절대 악’에 맞서 승리를 쟁취하는 과정은 게임 같은 충족감을 준다. 

그런데 이 먼치킨형 주인공의 특징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무엇보다 그들은 무조건적인 ‘선’을 추구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따라서 그들은 악인의 함정에 쉽게 빠지지 않고, 반성하지 않는 가해자를 용서하는 어리석음도 범하지 않는다. 그들은 위기에 적극적으로 맞서 싸우고 때로 악인의 방식을 차용해 악인을 함정에 빠뜨리기도 할 만큼 유능(?)하다. 그들이 만약 주인공이 아니었다면 악인이라고 여길 만큼 잔혹하고 가차 없는 복수가 행해짐에도 불구하고, 대중은 그런 스토리에 매료된다. 흔히 ‘사이다’라고 일컬어지는 서사가 바로 그것이다.

이 변화를 야기한 것은 무엇일까? 대중서사는 대중의 니즈가 가장 적극적으로 반영되는 영역이다. 그것이 곧 시장의 존재조건이기 때문이다. 여전히 착하지만, 마냥 ‘착하지만은 않은 주인공’의 등장은 곧 대중의 요구이기도 하다. 무능하고 어리석어서 고통 받던 주인공이 그저 착하기(멍청하기) 때문에 한방에 해피엔딩을 쟁취하는 것은, 더 이상 대중의 카타르시스를 자아내지 못한다. 현실에서라면 그토록 무능하고 착하기만 한 주인공 때문에 손해를 입는 것은 바로 지극히 평범한 일반인, 바로 자기 자신이기 때문이다. 이런 민폐형 주인공은 더 이상 연민의 대상이 아니라 짜증의 대상으로 인식되는 것도 당연하다.

 

위선이 아닌, 위악으로 세상에 맞선 주인공

하지만 여기서 반드시 기억해야 하는 것이 있다. 이런 변화가 ‘선(善)’ 자체에 대한 거부는 아니라는 사실이다. 오히려 이것은 ‘위선(僞善)’에 대한 거부에 가깝다. 착한 척하지만 사실은 무능해서 다른 사람에게 피해만 주는 주인공, 자신이 저지른 문제에 온전한 책임을 다하지 않은 채 구원자만을 기다리는 주인공. 이런 주인공은 더 이상 ‘선’을 대표하는 대상이 아니다. 

오히려 철저하게 자기 능력과 노력으로 무엇인가를 쟁취하고자 하며, 남의 것을 빼앗지 않지만 자기 것 역시 온전히 지켜낼 줄 알고 그러기 위해 노력하는, 그리하여 마침내 자기 자신은 물론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들까지 제대로 책임질 줄 아는, 그런 인물이 진정한 선을 대표하는 캐릭터로 인식되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드러나는 위악(僞惡)은 오히려 대중의 이해와 지지의 대상이 된다.

대중서사의 이런 변화에는 동시대의 풍경이 담겨져 있다. 그것은 대중들이 가장 잘 알고 있는 진실에 맞닿아 있다. 이미 계층 간의 사다리는 사라진 지 오래고, 기회의 균등은 출발선의 균등까지 의미하지 않는다는 사실 말이다. 고통을 인고하면 보상이 따른다는 동화 속의 해피엔딩은, 사실 기득권자들의 위선에 불과하지 않는가? 그러므로 그 누구도 신데렐라 같은 기적을 꿈꾸지 않는다. 

이제 허구적 서사는 어쩌면 현실보다 더 현실 같다. ‘먼치킨’에 가까운 능력을 탑재하지 않는 한, 그리하여 이 비틀어진 계층 구조에 전면으로 도전하지 않는 한, 그 어떤 역전도 불가능하다. 오늘의 대중서사에서 등장하는 ‘착하지 않은 주인공’은 이 불가능성에 대한 직접적인 반영 그 자체인 것이다. 위선이 아닌 위악으로 세상과 대결하는 주인공에게 매료될 수밖에 없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글·류수연

인하대 프런티어학부대학 교수. 문학/문화평론가. 인천문화재단 이사. 계간 <창작과비평> 신인평론상을 수상하며 등단했고, 현재는 문학연구를 토대로 문화연구와 비평으로 관심을 확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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