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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후보가 ‘학벌=능력=공정’의 등식관계를 깰 것인가?
어느 후보가 ‘학벌=능력=공정’의 등식관계를 깰 것인가?
  • 성일권 l <르몽드디플로마티크> 한국어판 발행인
  • 승인 2021.07.30 18:0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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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 부유층이 자녀들의 명문대 합격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이전투구하는 내용의 <스카이캐슬>이 한동안 초대형 드라마 블록버스터로 각광받은 데 이어, 요즘에는 <펜트하우스>가 인기를 끌고 있다. 드라마의 내용은 지극히 유치찬란하지만, 시청률의 고공행진 속에 시즌 3까지 이어지고 있다. 시청자들의 반응은 대단히 이중적이다. 비도덕적이고 반인륜적이라는 비판과 함께, 마약 중독 같은 탐닉이 교차한다. 작가와 PD의 반사회성을 비난하면서도 TV채널을 쉽게 돌리지 못한다. 엘리트 부유층이 자녀들을 명문대에 보내기 위해 탈법과 불법, 심지어 살인까지도 불사하는 모습은, 비록 드라마지만 우리 사회에 만연된 학벌 엘리트주의의 참담한 현실을 잘 보여준다.

우리 사회에서 학벌은 곧 능력이며, 또한 학벌주의는 곧 능력주의다. “능력주의가 공정함의 척도”라는 말이 우리 사회에 회자되지만, 사실 따지고 보면 그 ‘능력’은 학벌과 가정환경, 지역 연고 등의 요인에 따라 좌우된다. 피에르 부르디외는 이를 가리켜 문화자본, 아비투스(Habitus), 장(場, Champs) 등 그만의 학술용어를 만들어 능력주의의 실체를 파악하려 했다. 부르디외의 주장은, ‘개인의 능력’이란 순전히 개인의 치열한 노력으로 쟁취된 게 아니라는 것이다. 능력 있는 부모들이 펼쳐놓은 ‘장’에서 끼리끼리 어울리고, 취미생활과 공부를 함께하고, 나중에는 그들만의 상급학교에 가서 서로 끌어주는 이른바 ‘연줄 능력’에 다름 아니라는 지적이다. 

피레네 벽촌에서 말단 우체부의 아들로 태어난 피에르 부르디외는 뛰어난 머리와 각고의 노력으로 수재들만 들어간다는 그랑제콜(Grandes Écoles)에 입학했다. 그러나 학우들과 그 자신의 일상 및 꿈의 가능성이 판이하게 다름을 느꼈다. 주말이나 방학이면 부유층 학우들은 지중해 연안의 휴양지에서 요트를 타고, 오페라 공연을 즐기며, 시험 때는 소그룹 찍기 과외를 받는 반면, 자신과 같은 벽지 출신의 ‘지렁이’들은 골방에서 책을 읽으며 용꿈을 꾸지만, 현실의 벽을 뛰어넘기 힘들다는 것이다(이 같은 그의 학문적 성과는 『구별짓기』에 고스란히 담겨있다).

프랑스 엘리트주의의 상징인 그랑제콜 출신들은 정계, 재계, 교육, 관료계 등을 독점하며 격변기마다 대다수 국민들의 비판을 받아왔다. 특히 2019년 프랑스 사회를 휩쓴 노란조끼 시위대가 주장한 사회개혁의 하나는 그랑제콜 출신의 ‘카르텔’ 타파였고, 마크롱은 이 대학들의 개혁을 약속하기에 이른다. 지난 4월 마크롱의 결정은 그의 가장 혁명적인 개혁조치로 꼽힐 만하다. 가장 대표적인 국립행정학교(ENA)를 설립 76년 만에 폐지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마크롱은 프랑스 제5공화국 대통령 8명 중 4번째 ENA 출신이다. 그런 그가 자신의 모교를 폐교하고, 이를 대체할 공공서비스학교(ISP) 설치를 발표한 것은 놀라운 일이다.

ENA의 폐지는 앞으로 ‘에나르크(Énarque, 지배하는 자)’라는 상징적 수식어가 사라지는 것을 의미한다. 부르디외에 의하면 상징자본은 지식과 승인을 통해 명예, 위신, 명성을 획득할 수 있는 역량이며, 자신을 타인과 차별화하고 권력을 획득할 수 있는 상징적 기제로 작용한다. 따라서 ENA 폐지는 그 상징성의 해체라 할 수 있다. ENA는 시앙스포(Science Po) 같은 그랑제콜에 비해 출발이 훨씬 늦었지만, 에나르크라는 별칭이 말해주듯 ‘그랑제콜 위의 그랑제콜’로 꼽힌다. ENA는 1945년 설립 초기에는 레지스탕스로 활동했던 인사들을 선발했으나, 이후 파리의 부유층 출신 학생을 대거 선발하면서 ‘그들만의 대학’으로 변질됐다. ENA출신들은 관계 부처, 공기업에 이어 민간기업의 고위직까지 휩쓸었다. 마크롱 정부 또한 에나르크 동문회나 다름없다. 대통령, 총리, 대통령 비서실장, 국방장관, 재정경제장관, 중앙은행 총재 등 내각의 핵심 관료가 에나르크들이다.

그래서 ENA 출신의 과다편중과 이들의 사회적 기여, 학업 내용이나 정치적 책임에 대한 비판이 끊이지 않는다. 동문들의 강한 반대를 무릅쓰고, 마크롱이 ENA 폐교를 감행한 것은 엘리트주의에 대해 팽배한 국민적 비판과 냉소주의가 포퓰리즘을 내세우는 극우 정치로 옮겨가 정권의 근간을 흔들고 있다는 위기의식에서 나온 것으로 풀이된다. 최근 각종 여론조사에 의하면 마크롱의 지지율은 극우정당 국민연합의 르펜과 비슷하거나 낮은 편이다. 이에 따라 마크롱의 ENA 폐교를 정치적으로 해석하기도 하지만, 이에 대한 국민적 호응도는 높은 편이다.

ENA가 폐지되면, 그 다음은 오랜 전통의 시앙스포가 개혁대상이 될 것이라는 얘기가 나돈다. 상급 그랑제콜인 ENA의 입학생은 시앙스포 졸업생이 대부분이다. 시앙스포는 일반 대학과 차별화되는 소수정예 엘리트 대학이다. 나폴레옹 3세가 죽자 새로 등장한 프랑스 제 3공화정은 신분에 상관없이 능력만으로 엘리트를 선발하는 그랑제콜을 설립했다. 이후 인문, 이공, 상경 등 각 분야의 최고 인재를 육성하는 그랑제콜이 잇따라 등장해 현재에는 250여 개에 달한다. 입학은 대단히 어렵지만, 일단 입학하면 만사형통이다. 민주주의 시대에 ENA와 시앙스포 같은 그랑제콜 출신들은 서민층에게 눈엣가시 같은 존재다. 부르디외의 지적처럼, 능력 있는 부모에게 받은 유리한 아비투스와 장, 문화자본으로 얻은 ‘엘리트 간판’이 거대한 카르텔로 작용하며 경쟁의 공정성을 저해한다는 것이다.

 어디, 프랑스만의 문제일까? <스카이캐슬>과 <펜트하우스>에서 보듯 우리사회의 ‘ENA’, 서울대는 모든 가능성을 가늠하는 폭력적인 상징자본이 돼버렸으나 마크롱 같은 정치인은 아직 보이지 않는다. 2020년 대선을 앞두고 후보들마다 정치, (부동산을 포함한) 경제, 사회, 문화 등 각 분야에서 정책을 내놓고 있으나, 대학 개혁에 대해서는 입을 여는 이가 없다. 유치원부터 고등학교까지 한 줄로 세우는 ‘패권주의 교육’의 원흉으로 지탄받는 서울대를 폐지할 것인지, 폐지가 어려우면 서울의 대학들을 모두 서울대(파리 1~13대학처럼, 서울대 숫자를 부여함)로 확장할 것인지, 서울대를 지방으로 이전할 것인지, 또는 각 지방으로 분할시킬 것인지 아무런 대책이 없다. 괜히 긁어 부스럼을 일으킬까 싶은 우려에서일 것이다. 

스카이(SKY)니, 인서울이니, 해외유학파니 하는 ‘학벌 카르텔’의 철망에 갇힌 많은 청년들은 능력 있는 부모가 은밀하게 울타리 쳐준 ‘그들만의 마당’이 능력주의로 포장되는 사회 현실에 몸서리를 치고 있다. 지방에서 상경한 서른 한 살 청년이 6평 원룸에서 자취생활을 하며, 구직에 수 없이 실패하고 아직 내지 못한 이력서 150장을 유서 대신 남겨둔 채 고독사했다는 ‘슬픈’ 뉴스(7월22일자)는 사실, 새로운 뉴스가 아니다. 오늘도, 이 땅의 많은 청년들은 아직도 공정주의로 포장된 능력주의와 학벌주의의 그늘에서 극심한 ‘관계의 빈곤’을 겪으며 삶과 죽음의 고비를 넘나든다. 2022년 대선을 앞두고, 어느 누가 ‘학벌=능력=공정’의 터무니없는 등식관계를 깨며, 능력주의의 상징자본을 해체할 수 있을 것인가? 

 

 

글·성일권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한국어판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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