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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푸틴은 폭탄을 흔든다…
그리고 푸틴은 폭탄을 흔든다…
  • 필리프 레마리 l 기자
  • 승인 2022.04.04 0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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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닥터 스트레인지 러브’의 귀환이라고 해야 할까? 어쨌거나 블라디미르 푸틴은 우크라이나와의 전쟁을 자초해 전 세계 각국으로부터 제재와 보이콧, 비난 세례를 맞고 있다. 그러자, 푸틴은 이런 상황에서 벗어나기 위해 ‘억지력’이라는 방울을 열심히 흔들어대면서 ‘냉전’이라는 망령을 잠에서 ‘깨우고’ 있다. 어쩌면, 푸틴은 한껏 으스대고 있을지도 모른다. 유럽의 (중심이 아닌) 접경지대에 국한된, 국지적인 이 전쟁을 단번에 세계적 차원으로 격상시켰다면서 말이다.

 

러시아 잠수함 B-515(서구에서는 U-434) 내부, 함부르크 소재 선박박물관 cc 토니 웹스터, 2014

진단은 빗나갔다. 최근 대서양조약기구(NATO)는 보란 듯이 부활에 성공했다. “뇌사 상태에 빠졌다”라는 2019년 에마뉘엘 마크롱의 선언이 무색할 정도로 말이다. 오래전 본연의 존재 의미를 잃고, ‘국경을 초월한’ 임무로 아프가니스탄 전장을 헤매기에 이르렀던 북대서양 동맹이 비로소 전열을 재정비하기 시작한 것이다. 과거와 대치 상태는 비슷하다. 한편으로는 러시아가 접경지대에 대규모 병력을 동원하고, 핵무기·폭격기·함대 등 핵전력 부대에 경계 태세를 명령했다. 다른 한편으로는, 우크라이나와 동유럽 국가에 대한 군사 지원과 러시아를 상대로 한 전방위 보복 및 사상 초유의 제재조치가 줄을 잇고 있다. 그런 가운데, 수많은 국가가 군비 증강에 열을 올리고 있다.

러시아는 2월 21일 우크라이나 동부 두 지역의 독립 국가 지위를 인정한 데 이어 2월 24일 다음과 같은 경고와 함께 우크라이나에 대한 ‘특별 군사 작전’을 전격 발표하며, 전 세계에 첫 번째 충격파를 안겼다. 이날 블라디미르 푸틴은 “러시아를 방해하거나 위협하는 국가는 러시아의 즉각적인 대응과 역사에 없던 결과를 맞이하게 될 것”이라며 엄포를 놓았다. 그러면서 우크라이나 군사시설에 첫 포격을 가하고, 우크라이나 영토 안으로 러시아군 전차부대를 침투시켰다. 흡사 과거 헝가리 부다페스트와 체코슬로바키아 프라하의 민중 봉기를 진압하던 바르샤바 조약기구의 소련군 모습을 떠올리게 했다. 러시아의 1인자 푸틴은 “우크라이나를 점령하려는 뜻은 결코 없다”라며, “다만 우크라이나를 ‘탈나치화’하고, 친러 세력의 ‘학살’을 막는 한편, 우크라이나를 ‘비무장화’하려는 것이 목표”라고 확언했다. 그러면서 우크라이나군에 지도부 전복을 촉구했다. 물론 일부 실망스러운 결과를 낳았던 우크라이나에 대한 대규모 침공이 본격화된 이후, 이런 ‘적을 향한 악마화’ 시도는 금세 잊혀졌다. 

 

충격에 빠진 서방 전문가들

이어 푸틴의 입에서 나온 발언은 결정타였다. 이 발언으로 인해 비로소 전 세계가 경각심을 가지고, 유럽연합과 북대서양조약기구가 각종 조치에 나섰기 때문이다. 2월 27일 일요일, 푸틴은 ‘러시아의 억지력에 특별 경계 태세’를 명령했다. 금세 뉴스 스튜디오가 뜨겁게 달아올랐다. 낯익은 전문가들이 앞다퉈 방송에 출연해 각자 느낀 충격에 대해 논평했다. 

“(...) 그는 불장난을 하고 있다 (...) 금기를 깼으며 (...) 최악의 위험을 (...) 극단적 사태가 (...) 패러다임의 변화는 (...) 국제질서의 재편이 (...).” 한편 푸틴의 발언은 서방 지도자들의 분노에도 불을 댕겼다. “참으로 무책임한 (...) 용납할 수 없는 (...) 위험천만한 발언 (...) 존재하지도 않는 위협을 날조하고 있다 (...).” 

러시아 국방부에 따르면, 억지력이란 ‘핵무기를 이용한 전쟁을 포함해’ 러시아를 상대로 한 모든 공격을 좌절시키기 위한 목적의 모든 전력을 총칭한다. 러시아군의 억지력은 전략로켓군, 북해·태평양함대, 장거리항공사령부 등 총 3개군으로 구성되는데, 종종 ‘3대 핵전력’이란 별칭으로도 불린다. 항상 핵을 탑재한 무기를 운용하지는 않지만, 미사일·폭격기·잠수함·해상함대 등을 갖춘 부대다.

한편 억지력은 방어차원에서의 미사일방어체계나 대공방어 및 위성요격 시스템도 함께 포괄한다. 그럼에도 ‘특별 경계 태세’란 전투 준비 태세 중 상당히 높은 단계에 해당한다. 일부 전문가는 총 5단계 중 3단계로 보기도 한다. 즉, 발사가능한 높이로 잠수함을 상승시키고, 각종 요격 및 방어체계를 활성화하며, 숨겨둔 핵 운반수단을 꺼내, 발사관 해치를 여는 등의 조치가 취해지는 단계다. 그 다음 단계가 언제든 실제 발포가 가능한 ‘완전한 전투 준비 태세’다. 여러 단계에 걸쳐 안전한 지휘 체계와 전투 통제 절차를 두는 것은 러시아든, 그 외 국가든, 핵보유국이 돌이킬 수 없는 결정을 내리는 참사를 막기 위해서다.

 

핵위협, 푸틴의 취약함을 드러내는 징후?

핵억지의 기본적인 ‘문법’을 따른다면, (충분한 불확실성과 자율성을 수립 또는 유지하기 위해, 그리고 무엇보다 국민이 공포에 떠는 사태를 막기 위해) 대부분 지나친 핵 위협은 피하는 것이 통례다.(1) 하지만 블라디미르 푸틴으로 대변되는 러시아 정권은 끊임없이 핵 협박을 되풀이해왔다. 2014년 이미 크름반도 병합 때 핵 위협을 가한 바 있고, 최근 2022년 2월에도 8일, 24일, 27일 등 무려 세 차례나 위기감을 고조시켰다.

일각에서는 (실질적이든, 형식적이든) 핵전력 강화 태세가 오히려 러시아 정권의 취약함을 드러내는 징후라고 보기도 한다. 더욱이 푸틴은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다. 푸틴이 접한 난제들은 대략 다음과 같다.

 

  • 대다수 우크라이나인의 결사 항전 의지
  • 볼로디미르 젤렌스키로 대변되는 ‘우크라이나판 처칠’의 탄생
  • 이웃국에 대한 파괴적인 공격 행위를 향한 전 세계의 비난과 국제적 위신 실추
  • 우크라이나군을 향한 유럽과 미국의 무기 지원 확대
  • 이미 효과가 나타나기 시작한 러시아를 상대로 한 강력한 제재조치
  • 서방의 접경지대에 대한 실질적인 군사 동원 등 유럽과 NATO의 각성
  • 국제 제재의 여파를 실질적으로 체감하는 한편, ‘우크라이나의 형제들’을 구하기 위한 단순한 군사 ‘작전’이 실은 전쟁임을 깨닫게 된 국민들 사이에 형성된 반전 여론

 

쿠바 미사일 위기가 재현될 것인가?

프랑스 최고 군사교육기관 ‘군사학교’의 전 총장인 뱅상 데포르트 장군은 시간이 푸틴에게 불리하게 작용하고 있다고 평가한다. 그에 따르면, 푸틴은 진퇴양난에 빠졌다. 푸틴은 전쟁을 끝낼 필요성을 느낄 것이다. 그러나, “전장을 떠나려면 무엇 하나라도 손에 넣어야만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 사이 사태는 “그로즈니(체첸 공화국의 수도-역주)(2)가 될 수도 있지만 동시에 스탈린그라드(3)가 될 수도 있다. 푸틴도 그런 사실을 잘 알고 있다”고 덧붙였다.

뱅상 데포르트 장군은 ‘우려하는’ 마음을 감추지 않았다. “(2월 27일 일요일) 오후 세 시, 저들은 세상을 바꿔놓았다. 더 이상 10만 명의 생명과 4개 도시가 걸린 문제가 아니다. 이제는 전 세계의 파멸이 걸린 문제가 됐다. 결국 1962년 쿠바 미사일 위기는 재현될 것인가?(4) 당시 케네디 미대통령은 자국의 군을 말리는 데 많은 애를 먹었지만, 소련 흐루쇼프 서기장의 곁에는 현명한 참모들이 있었다.(5) 반면 지금 푸틴은 혼자다.” 

그러면서도 데포르트 장군은 적어도 군사 작전 초기만큼은 “푸틴이 어느 정도 자제심을 보여줬다”는 점을 지적했다. 초기에는 환희 속에서 우크라이나인을 ‘해방’시키려는 징집 군인들이 군의 주류를 이뤘다. 특히 데포르트 장군은 미국의 ‘우레와 같은 침묵’에 대한 놀라움을 강조했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기 전까지 미국은 요란한 발언을 쏟아냈지만, “직접 전투에 참여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점만은 분명히 했다. 결국 미국은 제 나름의 방식으로 러시아 군사작전의 ‘버튼을 누른 셈’이라고 또 다른 안보 전문가인 알랭 바우어가 지적했다.

프랑스 국방부 자문관을 역임한 피에르 코네사는 “1991년 이후로 러시아에 대한 대우는 점차 악화됐다”고 인정했다. “처음에 블라디미르 푸틴은 러시아인에게 구소련 붕괴 이후 추락한 자존감을 되돌려주는 등 비교적 유화적인 분위기에서 출발했으나, 결국 분노가 폭발했다. NATO는 바르샤바조약기구와 달리 해체되지 않았고, 끊임없이 확장을 거듭했다가(6) 다시금 자국을 봉쇄하기 시작했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코네사가 보는 해법은 무엇일까? 먼저 새로운 평화 체제의 밑그림을 그리기 위해 대규모 유럽 안보 회의를 개최하는 것이다. 또한 부분적으로나마 러시아의 안보 관련 요구를 실질적으로 인정하는 것이다.

 

격앙된 프랑스 

이 해법을 사용하지 않거나 통하지 않을 경우, 푸틴은 어디까지 나아갈 것인가? 사실상 많은 전문가들이 질문하는 대목이다. 한편 스웨덴이나 핀란드가 회원국이 된다면, 우크라이나는 말할 것도 없이, 그 밖에 여타 희망국들까지 줄줄이 NATO에 가입한다면, NATO는 또한 어디까지 나아갈 것인가? 2월 27일 <프랑스 앵테르> 라디오 방송에 출연한 카미유 그랑 사무차장이 거듭 밝혔듯이, 공식적으로 NATO는 러시아와 ‘전쟁 상황’이 아니라고 간주한다. NATO는 현재 ‘비례적인 방어 조치’, 접경지대에서 위협을 느끼는 동맹국을 위한 이른바 안보의  재확인(Reassurance) 계획에 그치고 있다.   

그랑 사무차장은 “러시아의 불만스러운 상황은 그들이 자초한 것”이라고 판단한다. 그러면서 오늘날 우크라이나는 “NATO의 일개 파트너에 불과하지, 결코 동맹국이 아니다”라는 점을 강조한다(그럼에도 어쨌거나 NATO는 실질적으로 우크라이나의 무기 지원 요청을 조율하는 역할을 맡았다). 하지만 프랑스 군사학교전략연구소(IRSEM) 소속의 피에르 아로슈 유럽안보 전문 연구원은 일간지 <리베라시옹>에서 1949년 창설된 이 기구의 활동이 비단 “회원국 방어에 국한되는 것은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대표적인 예로 1999년 코소보, 2001년 이후 아프가니스탄, 2011년 리비아에 대한 NATO의 군사작전을 꼽았다.(7)

프랑스의 반응은 다른 국가들에 비해 훨씬 격앙됐을 것이 분명하다. 프랑스인은 ‘억지력’이란 말에서 곧장 핵을 떠올리기 때문이다. 프랑스에 ‘타격력’(프랑스에서 오랫동안 핵무기를 일컫던 표현)이 존재하기 시작한 것은 1964년 이후다. 당시 프랑스는 샤를르 드골 대통령의 주도로 독자 핵 개발에 나섰고, 북대서양조약기구 통합사령부에서 탈퇴했다.(8) 프랑스의 핵은 오랫동안 일종의 생명보험처럼 간주되며, ‘비사용’ 무기로 남았다. 프랑스의 ‘중대한 이익’을 위협하는 적이 있다면, 적어도 그들의 공격에 상응하거나 혹은 훨씬 상회하는 피해를 입힐 수도 있는 타격, 때에 따라서는 ‘제2차 타격’까지 가할 수 있다는 위협을 의미했다. 

 

마크롱에게는 뜻밖의 호재가 될 가능성 

일본의 두 도시,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사상 최초로 핵폭탄이 투하되고 1년이 지난 1946년 이후, 미국의 억지력 이론가들은 지금까지는 전쟁에 승리하는 것이 목표였다면, 이제는 전쟁을 피하는 것, 혹은 전쟁이 일어나지 않게 대비하는 것이 중요한 문제가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최근까지 핵무기의 특징을 일컫던 ‘비사용’ 무기라는 개념이 등장한 것도 바로 이때였다. 냉전 시기 각국은 ‘공포의 균형’을 운운하며, 서로 용납할 수 없는 피해를 입힐 수도 있는 위험을 섣불리 자초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적의 합리적 판단에 기댔다.

그와 관련해 많은 부분을 좌우하는 것이 바로 가해국과 피해국이 간주하는 ‘중대한 이익’에 대한 정의, 더 나아가 핵무기 보유국의 신뢰도와 냉철함, 그리고 분별력이었다. 1983년 11월 16일, 러시아에 대한 유럽 미사일위기가 발생했을 당시 프랑수아 미테랑 대통령은 <앙텐느 2> 방송에 출연해, 프랑스 대통령의 중대한 역할에 대해 지적했다. “억지력 전술의 핵심 부품은 국가수반, 바로 나다. 모든 것이 국가수반의 결정에 달려 있다. 아마도 결국 쓰지 않는다는 결정으로 귀결되겠지만 어쨌거나 최종 결정이 날 때까지 다른 나머지는 그저 무력한 부품에 불과하다.”(2022년 2월 28일자, <르몽드>에서 인용)

프랑스의 정치판은 좌우를 막론하고 그동안 핵억지력에 동의해왔다. 가장 비판적인 진영(‘굴복하지 않는 프랑스’(FI))조차 온건한 수준의 비판에 머물렀다. 가령 지금까지 핵 억지력 전술이 보여준 효과는 인정하면서도 현 무기의 한계와 미래에 대해 자문하는 식이었다. 미사일 속도와 잠수함의 감지능력 등이 눈부시게 발전하면서 가령 우주 분야 등에서 새로운 제2의 억지 수단이 필요하게 될 것이라는 주장을 했다.

최근 우크라이나 사태의 여파 가운데 NATO의 ‘부활’ 외에 또 한 가지 주목할 점이 있다. 바로 유럽의 방위 강화 움직임이다. 대표적인 예가 최근 막대한 규모(1,000억 유로)의 군비 증강을 선언한 독일이다. 사실상 독일은 유럽 대륙 최대 군사력을 갖춘 국가로 발전할 수도 있는 나라다. 한편 이번 사태는 프랑스 대선 후보들에게도 역시 상당한 여파를 미쳤다. 가령 러시아 정부나 대통령에 대해 호의를 가진 것으로 의심받는 일부 대선 후보들은 그만 죽상이 됐다. 

반면 임기 말의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의 얼굴에는 화색이 돌았다. 다른 이들처럼 블라디미르 푸틴에게 뒤통수를 호되게 얻어맞고도 마크롱 대통령은 서둘러 총사령관복을 갈아입었다. 어느새 프랑스의 병사들은 루마니아로 향하고 있고, 프랑스군은 NATO 신속대응군(NRF)의 영속적인 활동을 보장하는 데 두 팔을 걷어붙이고 있다. 

어쩌면 이것이야말로 이 기사를 작성하는 이 순간에도, 러시아 차르의 ‘분노 폭발’이 어디까지 이를지 여실히 보여주는 대목이 아닐까. 

 

 

글·필리프 레마리 Philippe Leymarie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기자

번역·허보미 
번역위원


(1) 이런 관점에서, 2022년 2월 24일 “블라디미르 푸틴이 북대서양 연맹이 핵 연맹이라는 점을 알아야 할 것이다”라는 장이브 르 드리앙 프랑스 외무장관의 돌출 발언은 시의적절하지 못했다. 이후 프랑스 정부는 발언의 ‘맥락을 정확히 다시 해명’해야만 했다. “그가 말한 것은 NATO가 아닌, 프랑스와 미국, 영국이 핵강대국이라는 사실이며, 사실상 NATO의 입장에 이들의 입장이 포함된다는 점을 지적하려고 했던 것뿐이다.” (<르몽드>2022년 3월 1일자)
(2) 러시아군이 도시를 거의 다 파괴하다시피까지 하면서 유혈 진압한 덕분에 ‘평화를 가져올 수 있었던’ 체첸의 수도 
(3) 1943년 나치 침공에 맞선 최대 격전지로, 소련측에 수백만 명의 희생자를 안겨줬다. 
(4) 백악관과 크렘린궁 사이에 이른바 '핫라인'이 설치되는 계기가 됐다. 
(5) 결국 그는 1964년 10월에 실각했다. 
(6) 1996년 이후 11개 동유럽 국가가 NATO에 가입한 반면, 바르샤바조약기구는 해체됐다. 이어 2004년 두 번째 대대적인 NATO 확대 움직임이 일어났다. 특히 발트해 연안과 발칸반도 국가를 비롯한 7개국이 NATO 대열에 합류했다. 2017년에는 몬테네그로, 2020년에는 북마케도니아가 각기 NATO에 가입했다. 보스니아는 최종 회원국 자격을 부여받기 전 일종의 감압 장치처럼 간주되는 ‘회원국 자격 행동 계획’(MAP)의 일환으로 현재 최종 가입을 기다리고 있다. 
(7) Anne-Cécile Robert, ‘L'ordre international piétiné par ses garants(보증자들에게 짓밟힌 국제 질서)’,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프랑스어판 2018년 2월.
(8) 2007년 사르코지 대통령이 재가입을 결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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