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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비 되기를 강요하는 권력
좀비 되기를 강요하는 권력
  • 성일권 l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한국어판 발행인
  • 승인 2022.12.30 1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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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조가 3대 부패 중 하나”라고 한 최고 권력자의 발언은 곱씹을수록 소름끼친다. 노조를 척결대상으로 규정짓고, 부패한 범죄집단으로 인식하는 그의 노동관 속에서 노동자란, 애초에 아무런 생각 없이 국가와 기업의 요구대로 부지런하게 일만 하는 ‘근로’ 대원일 뿐이다. 

‘노동’과 ‘근로’의 의미는 천양지차다. 필요한 물자를 얻기 위해 육체적 노력이나 정신적 노력을 들이는 주체적 행위가 ‘노동(勞動)’이라면, 사용자가 로봇처럼 시키는 대로 일에만 집중하는 객체적 행위가 ‘근로(勤勞)’라 할 수 있다. 노동의 경우 삶의 존엄을 지키기 위해 신체와 체력, 지력 등 주체의 가용 자원을 합리적으로 조절하지만, 근로에서는 가용 자원을 마지막까지 모조리 ‘쓰임’ 당한 후, 감정과 영혼마저 마모돼 껍데기만 남겨진다. 

근로자가 노동자의 지위를 얻어 노동기본권을 쟁취하기까지 피와 눈물로 점철된 숱한 투쟁을 벌여야 했지만, 권력과 자본은 여전히 노동자가 아닌 근로자의 지위를 고수하려 한다. 헌법은 노동자들이 부여받은 노동기본권을 단결권, 단체교섭권 및 단체행동권으로 적시하고, 이들 노동삼권의 천부인권적 불가분성을 강조하고 있으나, 최고 권력자의 발언에서처럼 늘 기만적이다. 

그가 말하는 ‘노동개혁’은 국가와 기업의 요구에 맞는 ‘근로수첩’이지, 헌법상의 노동기본권에 준하는 정책과제가 아니다. 운이 좋아 바늘구멍 같은 취업난을 뚫으면, 누구나 고용노동부, 건강보험 및 연금공단에 노동계약서가 아닌 근로계약서를 제출하면서 근로의 대열에 합류하지만, 이제는 그의 말마따나 부패한 노조에 오염돼 언제 썩어갈지 모를 운명이다. 최고권력자는 노동자들이 단체교섭권 강화를 위해 만든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을 자유민주주의의 파괴·타협 불가세력으로 치부한 데 이어, 노조를 노동자 착취 집단, 범죄집단으로 정의했다.

따져보면 노동자들의 노동을 국가와 기업의 관리대상으로 인식한 것은 지금의 정권만이 아니다. 정권은 수없이 바뀌었지만, 노동자들은 ‘생각’을 지우고, 기계처럼 열심히 일만 해야 하는 ‘근로대’의 신세였다. 가깝게는 입만 열면 인권과 진보적 가치를 부르짖은 과거 정권에서도 근로계약서는 존재했다. 

권력과 자본은 노동자들에게 ‘잡스러운’ 생각을 금하고, 자신들이 원하는 ‘근로’만 하도록 해, 뇌가 잠든 ‘좀비’를 만들어간다. 임금인상 요구에 나선 화물연대 파업을 공권력 압박으로 무력화시켜 반(反)노동 지지층의 지지를 얻은 기세를 몰아 노조 말살에 나선 권력은 법인세 인하, 규제 완화, 부유층 거주지역의 부동산세 완화 등을 통해 불평등 구조를 더욱 심화시킬 요량이다. 

이런 추세대로라면, 토마 피케티의 주장대로 과거 20%대 80%의 구도였던 불평등 구조는 1%대 99%로 초고소득 계층으로 쏠리게 된다. 권력의 ‘노조부패’ 몰이는 ‘근로대’의 일원이길 거부한 노동자들을 배제함으로써 자본주의의 진정한 민낯을 보여준다. 노동을 하고 싶어도, 근로개혁수첩을 숙지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배제된 이들은 이제 ‘비경제활동인구’의 괄호 속에 넣어져 생략되고 셈해지지 않는 비인간으로 취급된다. 

알랭 바디우에 따르면, 현대 자본주의에서 인간은 두 가지 방식으로만 존재 가능하다. 노동을 통해 약간의 대가를 받는 임금 노동자 또는 자본으로 재화를 소비하는 소비자로 존재하는 것이다. 그러나 양쪽 어디에도 속하지 못하는 비(非)존재들이 있다. 노동자와 소비자 어느 방식으로도 존재할 수 없는 자들은 자본주의에 아무런 득이 되지 않는 존재이며, 따라서 고려되거나 셈해지지 않는 무(無)에 해당하는 인구일 뿐이다. 그의 말대로라면, 최고 권력자가 지적한 ‘부패한’ 노조나 개혁에 반대하는 노조는 척결돼야 할 무의 존재다. 

바디우는 이렇게 말한다.

“최악의 사실은 이들이 자본에 의해 무로 산정됐다는 것이다. 즉 이들은 세계의 구조적 발전의 관점에서 무이며, 정확히 말해 이들은 존재해서는 안된다는 점이다. 이들은 거기에 있으면 안된다. 차라리 그게 나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들은 거기에 있다.”

거기는 어디인가? 지구 반대편의 이야기이지만, 윤 정권의 노동자 경시는 2011년 뉴욕 월가에서 자신들이 이미 죽은 시체이자 비인간, 즉 99%에 해당하는 좀비였음을 한탄하는 좀비 시위대의 등장을 일깨운다. 너덜너덜하고 그로테스크한 신체로 표상되는 좀비로 분장한 시위대는 “엄마, 은행원의 뇌가 맛있대”, “부자들을 먹어치우자” 등의 팻말을 들고, 자본주의에 기생하는 권력과 소수의 특권층에 대한 격렬한 분노와 심판의 의지를 표출했다. 

네그리와 하트는 『선언』에서 최근 지구촌을 휩쓴 일련의 봉기 양상을 살펴보며, 시위대가 겨냥하는 대상은 무엇보다도 우리 시대 ‘대의의 실패’라고 주장한다. 권력과 자본은 사적 이익만을 도모할 뿐, 결코 99%가 다중을 대의하는 법이 없다며, 심지어 우리를 대의해야할 정치인들과 정당마저도 1%의 특권층을 대의하고 있을 뿐이라는 지적이다. 

현 정권을 지지하는 보수세력과 보수언론에서는 광화문과 시청의 차가운 시멘트 바닥에서 노동권을 주장하는 시위대를 흔히 ‘좌좀(좌파 좀비)’이라 부르며 무시하고 조롱한다. 이들의 주장에 따르면 시위에 몰려나온 ‘좀비들’은 이성적 판단능력이 부재하기에 정치는 이런 좀비들을 대의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이제는, 최고 권력자가 고물가, 환율 급등, 이자율 급등, 경기 침체 등의 국면에서 긴급하게 열린 비상경제민생회의에서 그 어떤 근거도 제시하지 않은 채 노조부패를 공직· 기업부패와 함께 우리 사회에서 척결해야 할 3대 부패 중 하나”라며, (노조가 중심이 되는) 노·노 간 착취시스템의 척결을 천명했다. 

이에 민주노총은 2023년 총파업 일정을 앞당기기로 해, 새해 벽두부터 졸지에 ‘좀비’가 된 노동자들의 달음박질 소리가 벌써부터 숨 가쁘게 들린다. 

 

 

글·성일권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한국어판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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