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우파는 ‘판관들의 정부’를 비난했다. 좌파는 승리에 환호했다. 노조와 단체들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하지만 2024년 1월 25일 프랑스 헌법위원회가 일명 ‘이민법’ 일부 조항에 대해 위헌 판결을 내린 사건은 무엇보다 이 기관이 얼마나 행정부에 종속되어 있는지, 그리고 민주주의가 얼마나 와해됐는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프랑스 행정부는 여자가 아니고, 헌법위원회(한국의 헌법재판소 격에 해당하는 기관-역주)도 신이 아니다. 하지만 그 차이는 미세하다. 왜냐하면 행정부가 원하는 것을 헌법위도 똑같이 원하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행정부가 법으로 군림하는 정권에서, 헌법위에 무엇인가를 기대한다는 것은 흡사 카지노 게임을 즐기는 것과 비슷하다. 대부분은 게임에 지지만, 어쨌든 한 번 이기면 게임을 지속할 수 있다. 얼핏 처음에는 그것이 바로 2024년 1월 25일 일명 ‘이민법’ 헌법위 판결(1)의 교훈이 아닐까 생각했다. 당시 헌법위는 이민법 조항 중 모두 35개 조항에 대해 위헌 판결을 내렸다.
이로써 헌법위는 권력을 견제하고, 무엇보다 인권과 자유를 위태롭게 만들 위험이 있는 법률로부터 인권과 자유를 지켜낸 수호자임을 몸소 증명해보였다고 여겨졌다. 한 마디로 헌법위가 2023년 4월 연금개혁 때보다는 훨씬 더 나은 모습을 보여준 셈이다. 하지만 최근 정부가 마요카섬에 대한 속지주의를 폐지할 방침을 발표함에 따라, 다시 헌법 문제에 관심을 가져야 할 필요성이 대두됐다. 그리고 이번에도 헌법위에 역할을 기대할 수 있을까? 사실 지난 1월 25일 헌법위 판결은 여러모로 신중한 해석을 요한다.
사실상 제랄드 다르마냉이 처음 제출한 이민법 원안은 헌법위의 위헌 판결로부터 모두 살아남았다. 내무부 장관은 당시 이민자 처리를 엄격하게 규제하고, 프랑스 거주자들 사이에 불평등을 조장하는 한편, 모든 정치 공동체에 필수적 요소로 간주되는 연대의식을 뒤흔드는 정책을 고집했었다.
하지만 헌법위가 문제 삼은 것은 이러한 본래 정부안이 아니었다. 의회가 가결한 정부안에서 일부 조항을 개정한 법안이었다. 헌법위의 ‘현인’들은 사실상 헌법이 수호하는 원칙들의 준수 여부, 그리고 그 역사적·사회적 의미와 영향을 진지하게 논의하려는 노력을 전혀 기울이지 않았다. 그렇게 할 경우, 어쩔 수 없이 본래 정부가 제출한 원안과 일부 조항을 개정한 의회 가결 법안을 동등하게 처리할 수밖에 없을 테니 말이다.
그 대신 헌법위는 대부분 ‘부수조항’(riders, cavaliers législatifs, 본래 법안의 취지나 범위를 벗어난 조항으로, 헌법에 위배된다고 간주한다-역주)이라는 극히 편리한 기술을 활용하는 데 그쳤다. 의원들이 추가한 특정 조항이 본래 법안의 취지와 관련이 없다고 보고, 이를 ‘부수조항’으로 판단해 위헌 판결을 내린 것이다. 하지만 가령 프랑스인과 결혼한 외국인의 체류 조건을 강화하는 것이 ‘이민을 통제하고, 사회편입을 강화하기 위한’(공식 명칭) 법률의 취지와 아무런 연관성이 없다는 사실을 우리는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이런 사실을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단, 일부 전문가들만은 예외일 것이다. 그들은 ‘현인들’의 판례(하지만 분명 용인하기에는 논란의 여지가 무성한 판결이다)가 매우 적절했다고 박수를 보내며, ‘판관들의 정부’를 꼬집는 세간의 비판(별로 이례적이랄 것도 없는 비판)이 얼마나 정당한지 몸소 증명해 보였으니 말이다.
헌법위, 행정부의 권한 확대에 동조
사실 1월 25일 눈속임식의 위헌 판결이 지닌 진짜 문제는 헌법위가 충분한 ‘판관’ 역할을 다하지 않았다는 데 있다. 물론 헌법위는 최소한의 성의로 형식적 측면을 검토했다. 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헌법이 행정부의 권한을 지속적으로 확대하는 토대가 된 점이었다. 프랑스 대통령과 정부는 의회를 무시하고, 헌법과 관련한 게임의 법칙을 초월하거나 혹은 악용했다. 그리고 여기에 헌법위가 동조했다. 그런 측면에서 이민법과 관련한 헌법위의 판결은 2023년 4월 14일 사회보장 재정수정법안(일명 ‘연금’ 판결(2))의 사례와도 매우 흡사한 것처럼 보인다. 두 경우 모두 헌법위는 심지어 충분한 논쟁의 가치를 지닌, 헌법의 원칙과 관련한 문제들은 전혀 거론하지 않은 채, 정부의 이례적인 헌법의 활용 및 남용 행위를 승인해줬다.
연금 관련 헌법위 심판은 여러 가지 문제를 다뤘다. 먼저 사회보장 재정법안 의결에 관한 문제를 꼽을 수 있다. 헌법 제47-1조는 행정부가 이런 종류의 법안에 대해 신속하게 심의를 처리하거나, 더 나아가 아예 표결 과정 자체를 생략할 수 있도록 허용하고 있다. 2023년 프랑스 정부는 연금시스템을 개혁하기 위해 바로 이 같은 절차를 활용하며, 결국 의회 민주주의를 교묘히 피해가려는 속셈을 고스란히 드러낸 바 있다.
하지만 헌법 제34조에 따르면, 특히 사실상 법적 연금개시연령 등을 비롯한 사회보장기본원칙과 관련한 결정들은 오로지 국민의 대표로 선출된 의원들의 관할에 속한다. 하지만 지난 1월 헌법위는 이러한 사안을 무시하는 판결을 내렸다. 연금법의 조항이 재정 ‘효과’를 지니기 때문에 헌법 제47-1조에 근거한 재정 조치로 간주할 수 있다고 본 것이다.
하지만 예산을 관리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재정 효과(바캉스를 떠나는 행위)를 가져다주는 조치와 그냥 재정 조치(예산을 절약하는 행위)의 차이는 충분히 구분할 수 있다. 실수는 명백했다. 그리고 결코 고의성이 없다고 볼 수 없었다. 게다가 단 한 번뿐인 특수한 실수도 아니었다.
행정부의 꼼수를 ‘비이례적’이라고만 평가
2023년 4월 판결에서, ‘현인들’은 의회 심의를 제한하거나 표결을 생략할 수 있도록 허용한 헌법 제도의 남용 여부를 판단해야 했다. 단순히 헌법 제47-1조만이 아니라, 상원 ‘표결 봉쇄’와 관련한 제44-3조, 그리고 하원 표결과 관련한 저 논란의 ‘제49-3조’에 대해서도 차례대로 검토해야 했다. 세상에 어떤 정부도 이토록 많은 꼼수를 한꺼번에 동원한 사례는 찾아볼 수 없었다. 하지만 ‘현인들’은 이렇게 다수의 헌법 조항을 동원한 사태를 그저 ‘비이례적’이라고만 평가하는 데 그쳤다.
그러면서 더 자세한 설명도 하지 않은 채, ‘이 경우’ 이처럼 “다양한 절차를 복합적으로 활용한 행위가 해당 사법 절차의 헌법 위배 결과를 초래한 것은 아니다”라고 평가했다. 하지만 대체 어떤 경우가 되어야만 비로소 다수의 꼼수를 결합한 수법이 헌법에 위배되는 결과를 초래한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일까? 정부가 무엇을 얼마나 더 해야, 위헌 판결을 받을 만한 일을 했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일까? 헌법위의 판결로도, 헌법위 사무총장의 발언으로도, 우리는 도저히 그 해답을 얻을 수가 없다.(3) 이렇게 모든 논쟁은 시작하기도 전에 이미 끝이 났다.
마지막으로 헌법위 심판은 하원 및 상원의 심의과정에서 정부가 추산한 연금액과 관련한 오류 문제도 다뤘다. 특히 최소연금액 1,200유로, 이와 관련한 수혜 조건, 수혜자 숫자 등과 관련한 오류가 발생했다. 하지만 ‘현인들’은 “일단 해당 추정치를 놓고 논의가 이뤄졌다는 측면에서” 큰 문제는 없었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렇다면 앞으로 장관들이 대체 바보처럼 의원들에게 정확한 정보를 제공할 이유가 무엇일까?
이민법 판결, 헌법의 존재 이유를 무너뜨려
헌법위의 판결은 결국 행정부가 민중의 대변자들을 속일 수 있는 권리를 인정해준 것과 다르지 않다. 이를테면 행정부가 더 이상 권력의 균형 따위는 안중에도 없이, 민중의 대변자들에게 아무런 얘기를 지껄이거나 혹은 제멋대로 법률을 악용할 수 있도록 허용한 셈이다. 한 마디로 헌법의 존재 이유를 무너뜨렸다고 볼 수 있다.
2024년 1월 25일 이민법 관련 판결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헌법위는 법률 내용이 헌법의 규범에 맞는지를 판단하는 데 더해, 법률 채택 조건, 국가수반에 의한 헌법위 심판 청구라는 형식적 측면, 이 두 가지 중대한 문제에 대해서도 답변을 해야 했다.
먼저, 정부는 입법 심의의 진실성 원칙을 무시하고, 2023년 12월 11일 정부안이 거부되자 공화당(LR)과 타협안을 도출한 뒤, 스스로 위헌임을 잘 알고, 심지어 그렇다고 말로도 표현한 법 규정을 표결에 붙이도록 요청했다. 이어 헌법 제5조에 의거해 국가제도의 수호자 역할을 해야 할 대통령이 “우리 헌법에 합치하지 않는 조항들이 존재”(2023년 12월 20일 <프랑스 5> 방송)한다는 사실을 잘 알면서도, 그러한 선택을 합법화했다. 그리고 마지막에 가서 ‘현인들’이 이 문제에 대해 철저히 입을 다물며, 위헌성을 정치적 도구로 활용한 행위의 합헌성을 승인해줬다.
헌법위는 ‘의회의 선택을 심리하는 항소법원’이 아니라고 했던가. 하지만 지난 1월 8일 로랑 파비우스 헌법위원장이 했던 이러한 훈계는 한낱 연극에 불과했음이 금세 드러났다.(4) 왜냐하면 사실상 우리는 다음의 사실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자고로 헌법위는 의회가 법안을 채택하면 해당 법안의 일부 혹은 전체에 대해 위헌 여부를 판정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 하지만 정작 지난 1월 25일 헌법위의 판결은 그와는 정반대로, 이미 12월 11일 하원이 한차례 거부한, 정부가 처음 제안했던 이민법 원안을 구제하는 역할만 했을 뿐이다.
둘째, 마크롱 대통령은 다른 기관에 대해 위엄 있는 자세를 보여야 한다는 평소의 지론을 몸소 증명하듯, 정확한 청구 사유도 명시하지 않고 최고 상급기관에 무작정 위헌심판을 청구했다. 헌법위는 이민법 판결에서 “제청된 법률과 관련해 어떤 특별한 청구 사유도 명시되어 있지 않았다”는 점을 지적했다. 사실상 “2023년 연금개혁안 가결 당시 엘리자베트 보른 총리의 사례처럼, 이 경우도 원칙적으로는 용납할 수 없는 ‘백지청구’에 해당하는 셈이다.(5)
이번에는 마요트섬 속지주의 폐지인가?
하지만 이 문제와 관련해 헌법위는 2023년 때와 마찬가지로 2024년에도 굳게 침묵하는 쪽을 선택했다. 그리고 이번에도 역시 행정부에 대한 독립성을 증명할 기회를 다시 한번 놓치고 말았다. 사실상 헌법의 남용을 암묵적으로 승인해줌으로써, 행정부를 어느 정도 모든 통제와 책임에서 자유로운 권력으로, 정작 헌법위가 제대로 살피지 않는 헌법적 진리를 판가름하는 유일한 자격을 지닌 권력으로 만들어주고 말았다.
사실 이러한 문제는 그리 새로울 것도 없다. 이미 헌법위 구성원의 면면만 들여다봐도 충분히 가늠할 수 있는 문제다. 대개 헌법위는 정치계 출신에, 법률에 무지하며, 제대로 된 가용수단도 갖추지 못한 자들(6)로 구성되어 있다. 파비우스가 헌법위원장을 맡은 이후로 이 기구가 제대로 된 위상을 보여준 적은 단 한 차례도 없었다.
2022년 11월 파비우스 휘하에서 헌법위는 과거 ‘개인의 자유 존중에 위배된다’(7)고 판단한, ‘전반적이고 자의적인 신원 검색’에 대한 기존의 위헌 판례를 뒤집었다. 그리고 이제는 프랑스 영토가 오로지 “공공질서 파괴의 특수한 위험에 놓여있다”(8)는 이유만으로 마요트섬에서 자의적인 신원 검색을 실시하도록 허용하고 있다.
사실상 이와 같은 ‘논리’가 앞으로 마요트 속지주의 폐지에도 똑같이 적용되는 사태를 우리가 어찌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을까? 지난 2월 12일 정부의 발표를 실행에 옮기기 위해 총리가 선택할 수 있는 길은 모두 두 가지다. 먼저 정부가 헌법을 개정하는 방법을 꼽을 수 있다. 파비우스 위원장이 헌법 제89조를 인용하며 지적한 것처럼,(2024년 2월 14일, <프랑스 앵포>) 이 경우 “헌법위의 의견을 구하는 절차는 없을 것”이다.
비록 동일한 기본법 규정에 따라, 헌법 개정을 위한 일정한 제약조건들(“공화국이라는 정부의 형태는 손댈 수 없다.”)이 존재하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어쨌거나 2003년 판결에 따르면 헌법위는 헌법 개정에 관한 문제를 심판할 수 없다.(9) 다음으로 헌법 개정 말고도 총리는 일반 법률을 채택하는 길이 있다. 이 경우 분명 야당이 헌법위에 위헌 심판을 청구하려 할 것이다. 하지만 어떤 경우이든지 간에, 지금까지의 판례에 비추어 보면, 그리고 점점 더 확대되는 행정부의 자율성을 고려해 볼 때, 결국 정부의 행동을 막는다는 것은 제발 어떻게든 화면 위에 달러 모양 세 개가 뜨기만을 간절히 기도하며 슬롯머신을 당기는 도박 행위와 별반 다르지 않을 것이다.
글·로렐린 퐁텐 Lauréline Fontaine
파리3대학(소르본느 누벨 대학) 공법 및 헌법학 교수. 주요 저서로는 『학대당한 헌법. 헌법위 해부(La Constitution mal traitée. Anatomie du Conseil constitutionnel)(Editions Amsterdam, Paris, 2023)』가 있다.
번역·허보미
번역위원
(1) 헌법위원회, 2024년 1월 25일자 판결 n°2023-86DC, 이민을 통제하고 사회편입을 개선하기 위한 법 www.conseil-constitutionnel.fr.
(2) 헌법위, 2023년 4월 14일자 판결 n°2023-849DC, 2023년 사회보장 수정재정법, www.conseil-constitutionnel.fr.
(3) 헌법위, 2023년 4월 14일자 판결 n°2023-849DC에 대한 의견, www.conseil-constitutionnel.fr.
(4) Abel Mestre, ‘Loi immigration : quand le président du Conseil constitutionnel, Laurent Fabius, tance Emmanuel Macron sur l'Etat de droit ‘이민법 : 로랑 파비위스 헌법위 위원장, 에마뉘엘 마크롱에게 법치국가 훈계를 하다’, <Le Monde>, 2024년 1월 8일.
(5) 헌법위, 합헌 선언을 위해 헌법위에서 따라야 할 절차에 대한 내규를 다룬 2022년 3월 11일자 판결 n°2022-152ORGA, www.conseil-constitutionnel.fr.
(6) ‘Du bon usage de la Constitution 헌법을 오독하는 헌법재판소’,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프랑스어판, 2023년 4월호, 한국어판, 2023년 5월호.
(7) 헌법위, 1993년 8월 5일자 판결 n°93-323DC, 신원 검색 및 확인에 관한 법, www.conseil-constitutionnel.fr.
(8) 헌법위, 2022년 11월 25일자 판결 n°2022-1025 QPC, www.conseil-constitutionnel.fr.
(9) 헌법위, 2023년 3월 26일자 판결 n°2003-469 DC, 공화국 지방분권조직에 관한 헌법 개정, www.conseil-constitutionnel.fr.
- 정기구독을 하시면, 유료 독자님에게만 서비스되는 월간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한국어판 잡지를 받아보실 수 있고, 모든 온라인 기사들을 보실 수 있습니다. 온라인 전용 유료독자님에게는 <르몽드 디플로마티크>의 모든 온라인 기사들이 제공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