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04월호 구매하기
소금의 역습
소금의 역습
  • 성일권 l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한국어판 발행인
  • 승인 2023.06.30 16:2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천일염 생산지로 유명한 신안의 염전

어렸을 적에 내가 가장 듣기 싫어했던 말은 “세상의 소금이 돼라”라는 말이었다. 학교 선생님, 또는 친구 따라 간 교회 목사님이 “소금 같은 존재가 돼라”라고 자주 말했었는데, 이는 『마태복음』의 글귀를 인용한 발언임을 나중에야 알았지만 그래도 이 말의 유용성을 알 수 없었다.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소금이 만일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후에는 아무 쓸데없어 다만 밖에 버리어 사람에게 밟힐 뿐이니라.”

우리가 먹고 마시는 음식에는 단맛, 신맛, 매운맛, 떫은맛, 매콤한 맛, 달콤한 맛, 시큼한 맛, 떨떠름한 맛 등 별의별 맛이 다 있는데, 하필이면 짜디짠 소금이 되라니. 다디단 사탕류의 과자를 좋아하는 나로서는 받아들이기 어려운 ‘훈계’였다. 

고학년이 돼서야 예수가 강조하신 소금은 형체가 달라져도 맛이 변하지 않으며, 고로 사람은 소금처럼 한마음이어야 한다는 의미라는 걸 어렴풋이 깨달았다. 옛 시절에도 바다에서 잡아 온 물고기를 소금에 절여 부패를 방지했고, 소금 스스로 처음 그 맛을 잃지 않았으니 예수의 말씀에 인용됐을 법하다.

어느 날, 존 스튜어트 밀의 『자유론』을 읽다가 “많은 사람들 중에서도 극히 일부만이 새로운 실험을 주도할 뿐이다. (…) 이들 소수야말로 세상의 소금과 같은 존재다”라는 문장을 보고, 기독교 문명권 철학자의 의식의 한켠을 들여다보는 것 같아 내심 가벼운 미소를 지었다. 

예수와 밀이 소금의 중요성을 강조한 것은 그들이 짠맛을 좋아해서가 아니라, 무릇 인간이라면 고체가 되든 액체가 되든, 액체가 됐다가 다시 고체가 돼도 맛이 변질하지 않는 항구적 존재성을 지녀야 한다는 당위론적인 화법이었을 터다. 그들에게 있어 소금이 맛을 잃었다는 것은 사람이 인간의 본성을 잃어버렸다는 의미인 셈이다. 본성을 잃어버린 사람은 사람의 얼굴을 하고 있으나 사람의 마음을 가지지 못한 사람을 뜻하는 셈이다. 이는 한낱 글쟁이인 필자의 주장이 아니라, 인류에 큰 가르침을 주신 ‘하나님의 아들’인 예수의 말씀과 한평생 최대 다수의 행복을 고민한 공리주의 철학자 밀의 글이라는 점을 지적하고 싶다.

느닷없는 일본 오염수 파동에 소금의 가치가 금값처럼 오르고 있다. 일본 원전 오염수 해양 방류 이슈가 터지기 전까지 천일염 20kg 한 포대가 2만 5,000원(온라인 쇼핑몰가격)이었던 것이 지난달 14일에는 3만 9,000원, 그리고 며칠 지나지 않아 5만 원대, 6만 원대로 올랐으며, 그마저도 품절된 곳이 대부분이다. 

오염수 방류로 벌어질 바다 먹거리 안전성 논란이 소금을 금으로 만들었지만, 일본 정부는 후쿠시마 원자력발전소의 녹아내린 핵연료를 냉각하기 위해 투입한 냉각수와 유입된 지하수가 합쳐진 오염수를 바다에 방류하겠다는 계획을 고수하고 있다. 정부와 집권당은 오염수 괴담에 현혹되지 말라고 전국 곳곳에 현수막을 세우는 등 여론전을 벌이고 있으나, 이에 부정적인 시민단체와 학계에서는 오염수가 소금뿐 아니라, 전복, 조개, 김, 낙지, 오징어, 고등어, 갈치, 김, 미역 등 생선류와 해조류까지 오염시키지 않을까 우려하고 있다.

음식 본연의 향과 맛을 깨우는 첫 번째 조미료가 소금인데, 최근에 소금을 찾아 마트와 쇼핑을 돌고 돌았으나 ‘안타깝게도’ 천일염 구매에 실패한 지인이 이런 말을 했다.

“고대 그리스에서는 소금(Salt)으로 월급(Salary)을 줬다지. 앞으로는 우리도 월급 일부를 소금으로 받아야 할 판이야.”

예수가 ‘변질하지 않는 인간’의 소중함을 소금에 빗대어 강조했고, 밀이 교양적인 소수의 가치를 소금이라고 말했지만, 우리 사회에는 변질하지 않은 천일염 같은 사람을 만나기 힘들다. 특히 정치인들은 권력의 달콤하고 매콤한 맛에 빠져, 우리 음식의 변질을 막고 맛을 정갈하게 하는 천일염의 참다운 짠맛을 잊은 듯싶다. 나만의 생각일까? 천정부지로 치솟는 소금값은 이 세상이 부패하는 것에 대한 소금의 역습이다! 

 

 

글·성일권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한국어판 발행인

  • 정기구독을 하시면 온라인에서 서비스하는 기사를 모두 보실 수 있습니다.
이 기사를 후원 합니다.
※ 후원 전 필독사항

비공개기사에 대해 후원(결제)하시더라도 기사 전체를 읽으실 수 없다는 점 양해 바랍니다.
구독 신청을 하시면 기사를 열람하실 수 있습니다.^^

* 5000원 이상 기사 후원 후 1:1 문의하기를 작성해주시면 1회에 한해 과월호를 발송해드립니다.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