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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뤼마니테>는 왜 이 둘을 ‘클론’이라고 불렀나?
<뤼마니테>는 왜 이 둘을 ‘클론’이라고 불렀나?
  • 목수정 | 작가
  • 승인 2024.01.31 17: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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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세 대통령, 34세 총리
마크롱 대통령과 아탈 총리지명자를 ‘LE CLONE’(복제)이라고 표현한 <뤼마니테> 표지.

마트에서 구입한 푸아그라와 샴페인에 적셔진 연말 휴가를 마치고, 신년을 시작한 프랑스인들은 총리가 교체됐다는 소식을 접했다. 주름 깊은 얼굴에 늘 어두움이 드리워 있던 62세의 여성 총리 엘리자베트 보른의 후임으로 등장한 사람은 34세 청년 가브리엘 아탈이다. 그가 교육부 장관으로 임명됐다는 소식을 들은 지 불과 5개월이 지난 시점이었다. 난데없이 교복 이야기로 잠시 세상을 시끄럽게 하던 그가, 이제는 정부의 수장이 됐다.

아탈은 특별히 잘한 것도, 못한 것도 없다. 왜냐하면, 그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총리의 비주얼이 젊은 버전으로 달라졌다는 사실 외에, 사람들은 어떤 기대도 실망도 가질 수 없었다. 맥락도 사연도, 따라서 어떤 설득력도 없는 사건이 거듭될 때, 사람들은 게임의 룰이 바뀌었음을 감지할 뿐이다. 젊음이 약속해 주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을 충분히 학습하기도 했다.

교육부 장관이 되기 전에 그는 1년간 공공회계부 장관이었다. 장관 취임 직후, 어떤 조세 포탈도 용납하지 않겠다는 포부를 밝혔으나, 집권 후 꾸준히 세금 조사관 수를 축소(1,600명)해온 마크롱 정부의 기조를 이어갈 뿐, 아무 변화도 만들지 못한 채, 더 묵직한 자리로 옮겨 갔다. 2017년 대통령 취임 직후, 마크롱이 한 달 이내에 노숙인이 없는 나라를 만들겠다고 공언했으나, 5년 후 프랑스 노숙인 수가 2배로 늘어난 것과 비슷하다.

반면, 프랑스의 슈퍼리치들(한화기준 1조 원 이상을 소유한 자산가들)은 지난 3년간 자산 규모를 평균 65.5% 증가시켰다. 취임 즉시 부유세를 폐지함으로써, 그들에게 깍듯이 답례한 마크롱의 행동과 그들의 두둑해진 금고는 깊은 관련이 있다. 치솟은 물가와 급격히 늘어난 노숙인 수가 관련이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젊고 로맨틱한 대통령’, 정치는 어디에?

국민 앞에서 공언한 말을 ‘정반대’로 실현했다는 사실 외에도 두 사람은 프랑스 진보 매체 <뤼마니테(L’Humanité>가 ‘클론’이라 표현할 만큼, 많은 유사성을 가지고 있다. 그중 가장 두드러지는 점은 미디어가 그들을 포장하는 방식에 있다.

2015년부터 2017년 사이, 당시 대선 후보였던 멜랑숑, 몽트부르, 아몽에게 할애됐던 모든 기사보다 마크롱 1인에게 바쳐진 기사가 더 많았다. 미디어는 마치 마크롱 쿼터라도 채워야 하는 듯, 그를 앞다투어 표지 모델로 실었다. 언론들은 일제히 그를 ‘젊고’, ‘역동적이며’, ‘잘생겼고’, 특정 이념에 치우치지 않은 ‘실용주의자’로, 24세 연상의 부인과의 파격적인 러브 스토리로 진보적인 인상까지 담아 매력적인 신상품으로 포장했다. 

그를 표현하는 미사여구 속에 그가 프랑스를 보다 살기 좋은 나라로 만들어주겠다고 약속하는 내용은 없었다. 새해 벽두, 아니, 실은 아탈이 교육부 장관이던 시절부터 미디어가 마크롱 등장 때와 비슷한 코드로 작동하고 있음을 많은 이들이 포착할 수 있었다. 

휴가지에서 휴식을 즐기는 모습, 명품 옷을 입고 화보를 찍은 사진들이 주간지 <파리 마치>에 실리고, 어린 시절 교우들 사이에서 왕따 경험을 했다는 짠한 스토리텔링이 대중의 동정심을 자극하기도 했다. 같은 어휘, 같은 톤, 같은 식의 호들갑이 4년 전 정계 진출 이후, 아무것도 한 게 없는 가브리엘 아탈의 포장에 동원됐다. 이번 주자는 친구 엄마와 결혼하는 대신 공개적인 동성애자라는 점이 조금 다를 뿐이다.

마크롱의 정당 ‘엉 마르슈(En Marche)’의 창립 멤버이자 당 대변인으로 본격적으로 정계에 발을 딛은 가브리엘 아탈은 2020년 정부 대변인을 맡으면서 대중에게 얼굴을 알렸다. 그는 방송에 빈번히 얼굴을 내밀며 마크롱과 그의 노골적인 자본가 정부가 벌이는 행각에 대해 변호 및 변명을 하기 위해 충성을 다하는 모습을 꾸준히 보여줬다. 어딘가 순진하고 조금 억울해 보이는 표정, 종종 말을 더듬으면서도, 상대의 말을 재빨리 받아치는 단타를 구사하며 뼈대 없는 논리를 극복해온 그는 제법 주인을 만족시켰던 듯싶다. 훈련된 말발과 번듯한 허우대, 주인에 대한 충성심 외에 그 어떤 공적인 쓸모도 입증되지 않은 가브리엘 아탈이 이제 프랑스의 황태자라는 사실을 미디어는 일제히 주입하기 시작했다. 

 

부르주아 패거리 과두정치(Oligarchy)

놀랍게도, 지금 벌어지는 일을 6년 전에 정확히 예측한 한 인물이 있다. 가브리엘 아탈의 중고교, 대학(파리정치학교) 동기인 후안 브랑코. 그는 2018년 출간된 저서 『황혼(Crepuscule)』에서 “에마뉘엘 마크롱의 부상이 자발적인 민주주의적 현상이라기보다는 과두정(Oligarchy)의 조작에 기반한 것이었으며, 이들은 곧 가브리엘 아탈을 똑같은 방식으로 끌어올릴 것”이라 명확히 기술한 바 있다.

『황혼』은 마크롱과 함께 본격적인 장이 열린 부르주아 패거리 과두정치의 현실과 그 타락한 황금마차에 올라탄 오랜 급우 아탈을 통해 과두정에 참여하는 인물들의 위험성을 폭로한 책이다. 위키리크스의 창시자 줄리안 어산지의 변호인이기도 한 후안 브랑코는, 변호사보다는 문제적 현실을 폭로하고 위선을 고발하는 활동가, 여러 저서를 집필한 작가로 더 잘 알려진 인물이다. 

“오늘날 정치인이 된다는 것은 매년 우리가 생산하고, 탐욕스러운 관료들이 수집하는 수십억 유로의 분배를 결정하는 것이다. 이 권력이나 저 권력에 유리하게 결정하고, 입맛에 맞는 자를 고위직에 임명하고, 정보기관이 수집한 정보를 받아 끊임없이 (패거리들을) 보호하고, 특권과 특혜를 분배하고, (유권자들을) 억압하고 파괴하는 사람이 되는 것을 의미한다.”

마크롱 당선 직후, 후안 브랑코의 책이 출판됐고 수십만 권이 팔렸다. 재벌과 미디어, 일부 테크노크라트가 한패를 이룬 과두제 체제의 주체들은 민주주의를 가장하기 위한 노력조차 거추장스러워한다. 노란 조끼의 격렬한 폭동에도, 2년 내내 나라를 마비시켰던 그 맹렬한 연금 개혁 반대 시위에도, 마크롱 정부는 눈썹 하나 까딱하지 않았다. 그에게 권력을 준 것은 국민이 아니었고, 앞으로도 아닐 것이기 때문이다. 헌법은 개정된 바 없으나, 세상은 어느새 그렇게 새로운 판으로 짜여 흘러가고 있었다.

 

알스톰 스캔들

2012년까지 로스차일드 투자 은행의 직원이던 마크롱이 2017년 프랑스 대통령이 된 과정엔 알스톰 스캔들이 있다. 기괴한 산업 스릴러를 연상케 하는 이 놀라운 사건은 미국 기업과 국가가 TGV로 유명한 프랑스 알스톰사의 간부를 구속, 협박해 프랑스의 기간 산업을 빼앗고, 그 과정에서 소수의 사람들이 거액을 취득한 사건이다. 마크롱은 이 사건에서 미국 기업 GE와 이 거래의 최대 수혜자인 로스차일드가를 위해 거래를 성사시켰다. 130억 유로(약18조원)에 달하는 이 거래는 프랑스 58개 원자로의 터빈 유지 보수를 외국 그룹에 맡겼다는 점에서 반대 측에서는 ‘국가적 스캔들’로 불려왔다.

2013년, 알스톰사의 원전업체인 알스톰 에너지의 간부 프레데릭 피에루치가 뉴욕 공항에서 FBI에 의해 체포되면서 사건은 세상에 알려졌다. 그에게 적용된 혐의는 ‘해외부패방지법(FCPA )’ 위반. 이 법은 다른 나라 기업이라도 부패 혐의가 포착되면 있으면 구금, 처벌할 수 있게 한다. 검사는 그가 10여 년 전 인도네시아에서 한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과정에서 현지 관료에게 뇌물을 준 것을 문제 삼았다. 사내 자체조사에서 무혐의 결론이 난 사건이었다. 미국의 부패방지법은 해외 기업을 인수합병함에 있어 기업 간부들의 약점을 잡아 미국에 유리한 협상을 견인하는데 남용됐다. 그들의 목표는 진실도 정의의 구현도 아니었다. 합법을 가장한 미국식 약탈의 도구였을 뿐이었다.

프레데릭 피에루치의 구속 후, 미국 연방검사는 알스톰사의 최고경영진 구속을 목표로 수사 강도를 높였고, 보석은 허락되지 않았다. 그 사이 GE사로부터 알스톰 최고 경영진에 인수요구가 전달됐고, 이에 저항한다면 피에루치가 당하고 있는 것은 본보기일 뿐임이 분명해졌다. 궁지에 몰린 알스톰 경영진은 매각에 동의하기에 이르나, 당시 재경부 장관 몽트부르가 결사적으로 반대를 하고 나섰다. 10년 치 해외 수주가 예약된 알스톰 에너지는 매각할 이유도 없을 뿐 아니라, 프랑스 58개 원자로의 터빈 유지 보수를 담당하는 이 회사를 외국에 맡기는 것은 국가 안보 차원에서도 불가한 일이었다. 그러자 당시 올랑드 대통령은 몽트부르를 경질하고, 이 매각에 협력하던 마크롱을 경제부 장관에 임명했다. 한 달 후 알스톰 에너지의 GE 매각이 결정됐다.

알스톰의 에너지를 손에 넣은 GE에 프랑스의 모든 원자력 기술, 심지어 프랑스의 핵 항공모함 드골호의 핵심 설계까지도 GE에 넘어갔다. 법의 이름으로 약탈을 계획한 미국의 합법적 마피아에 마크롱이란 젊은 피가 투입된 셈이다. 2019년, 이 사건에 대한 프랑스 국회 청문회를 주도하며 사건을 조사해온 공화당 올리비에 마를렉스 의원에 따르면, 알스톰 매각에서 발생한 수수료의 상당액이 마크롱 후보의 주머니에 들어갔다. 사건에 대한 수사는 검찰로 넘어갔으나, 현직 대통령이 과거에 저지른 부패 사건에 대한 수사는 제대로 진행되지 않았다.

인수 7년 뒤, GE는 알스톰 에너지를 다시 프랑스에 매각했다. 필요한 기술을 다 빼 간 후, 중고품 시장에 내놓은 회사를 프랑스전력공사가 사들였다. 외환은행을 헐값에 매입한 후, 우리은행에 되팔았던 론스타처럼. 그동안 프랑스는 약 5,000명의 실업자를 양산했으며, 샤를드골 항공모함에 대한 온전한 통제력도 빼앗긴 상태였다. <마리안느> 2019년 9월 27일자에서는 GE-알스톰 에너지 인수 사건에서 영-미국계 로펌인 호건 로벨스와 함께, 로스차일드, 뱅크 오브 아메리카가 최대 수혜자였으며, 마크롱 대선 캠프의 첫 후원자가 로스차일드가의 5개 계열사였다고 보도한 바 있다. 

2년간 미국 감옥에 수감됐다가 풀려난 피에루치는 이 사건을 처음부터 취재해온 언론인 마티유 아론과 함께 자신이 겪은 모든 과정을 저술해 『미국 함정(Le Piège Américain)』이란 이름으로 2019년 출간했고, 국내에서도 『미국 함정』이란 제목으로 번역 출간됐다.

 

영리더가 가져올 미래

“문제는 앞으로 일어날 일이 상상하기 어려운 방식으로 폭력적일 것이라는 점이다. 나는 완벽하게 통제된 미디어 환경에서 수많은 성공을 거둘 수 있는 학살의 게임이 벌어질 것이라고 예측한다. 그리고 우리 모두는 그에 대한 공동의 책임을 져야 할 것이다. 우리 사회는 인류를 통째로 약탈하며 번성하고 있다. 이 사회는 더 이상 인류를 풍요롭게 하려는 자들을 보호하거나 약탈만을 목표로 하는 자들에 맞설 무기를 갖고 있지 않다.” 6년 전 예측이 현실로 벌어진 후, 후안 브랑코는 페이스북에 올린 장문의 글을 통해 다시 한 번 앞으로 벌어질 세계를 예견했다.

과두 체제의 부름을 받아, 자국에 명백한 위해를 가한 청년은 그 대담한 행위를 통해 실력(!)을 인정받으며, 양손에 칼을 부여받는다. 그리고 자신과 똑같은 인물을 키워 비슷한 행위에 서슴없이 나설 수 있도록 훈련시킨다. 우연찮게도 다보스포럼이 영리더로 키운 정치인들의 리스트에 마크롱과 아탈을 나란히 리스트에 올렸다. 그들은 젊지만, 지구상의 가장 오래된 권력의 지배를 받는 어린 꼭두각시들이다. 

총리 취임 후 처음 프랑스 국회에 출석한 가브리엘 아탈을 향해, 녹색당 대표 시리엘 샤틀랭 의원은 이렇게 질문했다. “마크롱 정부는 지금까지 의회 없이 (헌법 49조3항에 의거, 정부 단독으로 법안 처리한 경우가 무려 23회에 이름) 독단으로 정부를 운영해 왔다. ‘부자들에 의한, 부자들을 위한 정부’로 당의 슬로건을 붙여도 좋을 만큼, 마크롱 정부는 특정 집단만을 대변해 왔다. 당신에게 한 가지만 묻겠다. 마크롱의 낙점으로 총리가 된 당신은 특정 계급의 이해를 대변하면서 우리의 민주주의를 약화시킬 것인가?”

아탈은 즉답을 피하며 특유의 말장난 테크닉으로 상대를 공격하며 위기를 면한다. 그는 이 질문을 들을 귀도, 그 질문에 대해 고민할 심장도 갖고 있지 않다. 마크롱 행정부에 프랑스 의회는 거추장스러운 구시대의 유산일 뿐 논의의 상대가 아니다. 그들은 단독 드리블로 플레이하고, 득점하며 필요하다면 반칙과 폭력을 서슴지 않을 것이다.

아탈이 총리의 옷을 입고 대중 앞에 선 날, 유럽에선 농민 봉기가 시작됐다. 독일과 루마니아, 네델란드, 폴란드 그리고 프랑스에서. 다국적 농공기업들의 이해 극대화를 위해 자국의 독립적인 농민들을 죽이거나 철저히 복속시키라는 유럽연합(EU)의 지침은 유럽 농민들이 트랙터를 끌고 도로와 도심을 점령하며 저항하는 결전의 상황을 야기했다.

대결이다. 피할 수 없는.

 

 

글·목수정
파리에 거주하며, 칼럼 기고와 책 저술, 번역을 하고 있다. 2023년 최근 저작으로 『파리에서 만난 말들』 , 역서로는 『마법은 없었다』 (알렉상드라 앙리옹-코드 저)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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