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확진자 증가세가 꺾이지 않는 한편, 스태그플레이션과 기후위기는 인류의 목을 졸라온다. 밤에도 낮에도, 숨 막히는 열대야가 끝나지 않는 듯 하다.
그럼에도 지도자들에겐 이 위기를 타파할 비법이 있는 것 같다. 모든 문제의 원인을 누군가에게 몰아주고 자신은 발을 빼는 것이다. 당장 점심값이 크게 올라 “런치 플레이션”이라는 신조어까지 등장했지만, 전 정권의 허물을 밝히고 여가부를 공중분해하는데 급급한 정부는 탈현실적이다.
아니나 다를까, 당면한 모든 난관의 원인을 단 하나의 요인으로 돌리려는 관행은 고대 로마 시대에도 있었다고 한다.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8월호는 국제사회 위기와 최신 동향을 재치 있게 전한다.
“이게 다 ○○때문!” 지도자들의 마법의 주문
경제위기가 엄습하자, 각종 분야에서 마법의 주문이 이어진다. “이게 다 푸틴 때문이다.” 석탄발전소의 재가동, 철도운송 산업 피해, 디지털 공해까지 모든 책임이 푸틴과 전쟁에게 지워진다. 이런 관행은 문제의 복합성을 가려 해결방안도 묘연하게 만든다.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프랑스어판 발행인 세르주 알리미는 8월호 칼럼 ‘마법의 주문’에서 프랑스의 예를 들었다. 프랑스 정부는 폭염 속 가장 가난한 사람들에게 선풍기와 물병을 주면서, 자전거 대신 차를 몰고 장을 보는 사람들을 위해 휘발유 가격을 할인해 주고 있다.
비슷한 사례는 어디에나 있다. 8월호의 발행인 칼럼(‘반동의 시대’)에 따르면 윤정부는 특정지역 부유층을 위해 부동산세를 감면하고 코로나 시대에도 사상 초유의 실적을 거둔 기업들을 위해 법인세를 끌어내렸다. 하지만 노동자들에게는 “인플레이션”을 앞세워 기업을 두둔하며 압박을 가하고 있다. ‘임금인상이 물가상승의 주범’이라는 논리가 성립한다면, ‘기업의 이윤 확대가 인플레이션의 주범’이라는 논리가 더 큰 정당성을 가지지 않을까?
‘뭐든지 할 수 있는?’ 국가
각 국민국가는 지금의 위기에 얼마나 잘 대처하고 있는가? 앞으로의 역사가 평가하겠지만, 현대를 살아가는 시민들의 의구심은 커져가고 있다. 피에르 랭베르 기자의 ‘국가의 무능을 파고든 초국가적 민간기구’ 기사에 따르면, 각 국가는 지난 20년 동안 ‘즉흥 안무’를 선보였다. '국가'는 칼레에 있는 아프가니스탄이나 시리아에서 온 난민들을 비인간적으로 대우하면서도, 우크라이나인들은 두 팔 벌려 환영하기도 한다. 친 러시아 언론의 활동을 금지하기도 하고, 미국의 전쟁 범죄를 폭로한 줄리언 어산지에 대한 박해에는 동조하기도 한다. '국가'는 뭐든지 할 수 있다지만, 정말 그럴까?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8월호에서 자세한 실태를 확인할 수 있다.
한편, 자국 영토에서 분리독립주의자들과 대치 중인 국가는, 독립국가로 인정받기 어렵다. 해당 국가의 해외 구 연방 소속 지역이 주권을 획득한 경우에도 말이다. 스페인이 코소보에 대사관 개설을 거부하는 것도, 카탈루냐의 분리독립운동을 고려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장아르노 데랑스는 ‘무엇이 신생 국가독립을 방해하는가’ 기사에서 국제법의 규범이 국가의 자의적 선택에 앞선다고 말한다. 힘의 논리가 지배하고 모든 다자주의적 수단이 무용지물이 돼버린 듯한 세상에서 ‘국제법’이 어느 때보다 더 많이 언급되고 있다.
잃어버린 고향
매년 고향을 방문했던 알제리계 프랑스인들의 발목이 잡혔다. 코로나 바이러스 때문에 항공과 해양 교통이 막혔기 때문이다. 그들은 터무니없이 비싼 비행기 가격을 감수하면서까지 애타게 표를 구한다. 왜일까? ‘알제리행 바캉스가 품은 다의성’ 기사에 따르면, 그들의 여행은 단순한 휴가가 아니라 알제리인의 역사와 이민사를 비추는 거울이다. 알제리행 비행기가 인기 있는 이유는 그저 고향에 대한 향수나 지난 관행이 아니라는 뜻이다. 그들의 바캉스는 많은 재고의 여지를 남긴다. 1970년대의 ‘이민자’들에게, 그들의 자녀들에게, 이 여행은 꿈꾸던 ‘귀향’을 대신한 ‘바캉스’다.
‘고향으로 돌아오는 레위니옹 청년들’ 기사는 프랑스가 레위니옹 섬 주민들의 이주를 장려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 이유는 높은 인구밀도 때문이다. 그러나 많은 레위니옹 청년들은 섬을 떠난 후에야 자신을 발견한 느낌이라고 말한다. 프랑스에서 이주를 북돋기 위해 그들에게 꿈을 팔았기 때문이다. 프랑스에 가야 성공할 수 있다는 기관들의 말은 청년들을 섬 밖으로 나오도록 유혹한다. 레위니옹 청년들의 프랑스 이주 선택은 그들 개인의 자발적인 의지였다기보단 프랑스의 ‘부추김’에 가깝다.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8월호는 이밖에도 ‘드라큘라의 귀환’ 기사를 실어 빅토리아 시대의 저항정신을 소환했다. 또한 ‘한반도’면에 ‘대통령 조문, “아베가 아시아의 번영과 발전에 헌신”’ 기사와 ‘성소수자 관찰 예능 <메리퀴어>이 보여준 다양성’ 기사 등 국내 정치∙문화 전반에 대한 폭넓은 시야를 담았다.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8월호 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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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김유라 기자, 박지수 인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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